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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국프리즘

'살기 좋은 지역' 제대로 만들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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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는 한동안 "주택 200만 호 건설"과 같이 물량적 목표를 향해 돌진했던 도시건축 계획의 시대에 살았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와 같이 듣기에도 다정스러운 일상적 목표를 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부 부처별로 경쟁이라도 하듯 살기 좋은 마을을 위해 많은 노력과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행자부의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소도읍 육성 사업, 신활력 사업 ^농림부의 농어촌생활개선 사업, 은퇴자 마을 ^문화관광부의 문화도시, 가고 싶은 섬 계획 ^정통부의 정보화 마을 ^해양수산부의 어촌관광마을 ^환경부의 생태마을 ^여성부의 가족친화 사회환경 ^복지부의 건강도시 ^건교부 혁신도시 등 이름도 다양하다.

이처럼 정부 각 부처가 '살기 좋음'이라는 어려운 화두를 계획의 핵심 목표로 하면서 우리 시대의 공공 도시건축 문화도 변하고 있다. 인도 콜카타에 사는 노숙자들보다도 우리 국민이 더 불행해 한다는데 'Happy Korea Project'라는 부제의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와 같은 사업으로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꼭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음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의 내용이 진정 우리의 일상생활에 관한 것이 되길 바란다. 위 사업들이 생활환경 개선이라는 용어를 빈번히 쓰고 있지만 정작 주요 내용은 여전히 테마관광형과 기업클러스터형 마을 모델에 치중하고 있다. 관광과 기업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가 꼭 필요한 일이지만 최종 검증은 그 활성화를 통해 동네 동네마다 얼마나 더 양질의 돌봄 시설이 늘었는지, 얼마나 더 보행 환경이 나아졌는지, 얼마나 더 쓰레기가 잘 치워지는지, 얼마나 더 녹지가 늘었는지 등의 지극히 평범한 내용들로 짜여야 할 것이다. 이들의 지속적 모니터링, 유지 및 관리도 중요하다.

둘째,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를 위한 선행 작업으로 우리 상황에 맞는 주민참여형 공동체 설계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되면 좋겠다. 부처별 마을사업은 모두 한결같이 주민 참여를 실행방법으로 나열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아직 주민자치 성격의 동네 활동을 해 본 경험이 없다. 일본의 마치즈쿠리, 구미의 근린계획과 같은 선진사례를 식상할 만큼 많이 들어도 우리 동네에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거액의 지원자금이 덜컥 들어와 주민참여형 설계를 하라 하면 동네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시작 단계에서는 실현될 가능성이 높고, 구체적이고, 아주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에 중점을 두면 좋겠다. 각 동네에 맞는 공동체 설계 지원 시스템도 갖췄으면 한다. 이것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큰 자금 지원에 의한 주민참여 마을사업은 당분간 보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작은 동네, 주민참여 연습이 차곡차곡 쌓여 사회자본을 구축하는 것이 참다운 지역만들기일 것이다.

박소현 서울대 교수·건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