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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부드러움 조화이룬 ˝환상의 율동˝|볼쇼이 발레단 내한공연 앞으로 한달보름 (무용전문가 정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금세기 발레의 최고봉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소련볼쇼이발레단의 역사적인 내한공연이 한달 보름여 앞으로 다가왔다.
볼쇼이 발레단을 초청한 중앙일보사는 『백조의 호수』『지젤』전막공연 및 발레하이라이트등 한국발레사에 영원히 기록될 이번 내한 공연이 갖는 의의와 볼쇼이의 예술세계, 그리고 한국발레에 미칠 영향등을 홍정희(이화여대·발레)·조승미(한양대·발레)·김채현(서원대·무용평론)교수를 통해 알아봤다. 【편집자주】
▲김채현교수=볼쇼이 발레단이 우리나라에서 『백조의 호수』 『지젤』 전막공연을 갖는 것은 처음있는 일로 우리 발레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물론 그간 볼쇼이발레단의 일부 단원이 국내에서 공연한 적은 있습니다만 이번 공연은 차원을 달리합니다. 발레단은 물론 볼쇼이관현악단과 조명·의상·소품등 극장을 빼곤 볼쇼이의 모든 것을 잠시 서울로 옮겨놓는 것이니까요.
두분 선생님께서는 해외에서 볼쇼이발레단의 공연모습을 직접 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 볼쇼이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대부분의 국내팬들을 위해 직접 보신 볼쇼이를 소개해 주시지요.
▲홍정희교수=87년 뉴욕공연때 『지젤』을 봤는데 정말 대단한 열기였습니다. 8년여만의 뉴욕공연이었는데 『지젤』의 경우 매표첫날 매진됐을 정도였으니까요. 간신히 맨 꼭대기의 제일 나쁜 자리표를 구해 관람했는데 그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여러 발레단의 공연을 봤습니다만 그처럼 완벽한 공연은 처음이었습니다.
▲조승미교수=고두노프가 미국으로 망명한 79년 뉴욕공연때 볼쇼이의 『백조의 호수』를 봤습니다. 그때도 이미 티킷이 매진돼 몇시간씩 줄을 서서 반납된 표를 구했죠.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옆구리를 찔러보기도 했습니다. 공연을 같이 본 저의 언니는 『그림을 그려도 저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라며 넋을 잃었습니다.
▲김=볼쇼이의 발레가 그처럼 감동을 주는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요. 볼쇼이의 예술적 특징이나 강점은 무엇입니까.
▲홍=성격발레고 민족발레라는 점을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또 스타니슬라프스키적 전통이 강해 극적 전개가 뛰어납니다. 게다가 댄서 한명 한명이 거의 모두 세계적인 거장들이고 이들이 함께 추는 군무도 실수하나 없이 완벽합니다.
▲조=볼쇼이 무용수들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극에서 극으로 흐르는 테크닉이 강렬하면서도 완벽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데 특히 남자 무용수들의 도약은 정말 뛰어납니다.
▲홍=볼쇼이의 테크닉은 내면세계에서 출발합니다. 마음속 감정의 흐름이 팔·다리의 동작으로 표출되는 것이지요.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들의 동작은 「흐르는 강렬함」쯤으로 묘사될수 있습니다.
▲조=볼쇼이의 테크닉에는 힘이 있으면서도 우아하고, 또 끈적거리는 친밀감이 있습니다.『백조의호수』2막의 파드되(2인무) 같은 경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깔끔합니다.
▲홍=결국 볼쇼이의 강점은 내면세계와 탄성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완벽한 기술과의 적절한 조화입니다. 물론 뛰어난 지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끊임없는 연습의 결과지요.
▲김=볼쇼이로부터 우리 발레계가 얻을 교훈은 참으로 많습니다. 우선 볼쇼이의 테크니은 우리의 춤사위와 흡사한 점이 많습니다. 이점 한국형 발레를 창출해내는데 모범답안이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볼쇼이를 비롯한 러시아발레와 우리의 춤사위를 비교하면서 한국형발레를 세계적인 발레로 도약시킬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홍=춤동작중 상체는 사상이나 철학을, 하체는 테크닉을 표출합니다만 우리춤은 상체동작을 강조해 테크닉적인 측면이 다소 약합니다. 러시아발레에선 상·하체를 함께 사용해 양자가 조화를 이룹니다. 그러나 내면세계가 손끝이나 손끝의 천자락에서 탁탁 파동치는 모습에서 우리 춤사위와 러시아발레는 너무 흡사합니다.
▲조=공감입니다. 볼쇼이의 『석화』라는 작품을 봤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한복차림의 여인들이 나와 강강술래 비슷한 춤을 추는 장면이 나왔거든요. 양목이 서로 통하는 데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비슷한 소재를 갖고 있는 우리는 왜 저런작품을 못 만드나 하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김=이번에 안무를 맡게될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인간심리 묘사에 특히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볼쇼이에서 26년간 안무를 해온 그의 안무세계와 주요무용수들로 화제를 돌려볼까요.
▲조=지난해 그리고로비치가 서울에 왔을때 민속촌등을 함께 다녔습니다. 한마디로 질박하다는 인상이었습니다. 농사꾼같은 수수함과 낭만적인 풍요로움이 느껴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엄격하면서도 자상함을 경비한 인물입니다. 또 매사에 하나도 빼놓지 않는 세밀함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홍=『백조의 호수』에서 오데트역, 『지젤』에서 지젤역을 맡게 될 니나 세미조르바는 부연설명이 필요없는 세계적 무용수입니다. 세미조르바와 더블 캐스트로 공연하는 알라 미하일첸코는 그리고로비치가 어릴 때부터 키워온 보석 같은 존재입니다.
▲조=게다가 이번 공연에 20세기 발레사에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불세출의 발레리나 갈리나 울라노바(80)가 발레마스터 자격으로 함께 내한하는 것은 정말 뜻 있는 일입니다.「그냥 걸어가는 모습 그 자체도 완벽한 춤」이라는 평을 들은 울라노바는 소련최고의 예술인에게 주어지는 레닌상을 수상했고 74, 80년에는 영웅의 칭호를 받았지요. 그녀의 내한은「발레리나에게는 죽을 때까지 스승이 필요하다」는 격언을 실감케 합니다.
▲김=유럽에서 시작된 발레가 러시아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 같지만 사실은 당연하다고 볼수 있습니다. 발레에 대한 소련정부의 지원은 정말 부러울 정도입니다. 이제 문화부가 생기고 했으니 우리도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기대해 볼만합니다. 바이얼린이나 피아노같은 부문에는 세계적인 연주가가 있지만 아직 그에 필적할 발레리나가 없는 게 우리 발레계의 현실입니다. 볼쇼이의 이번 내한공연에서 우리 정부나 발레인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결론삼아 얘기해 주십시오.
▲홍=소련정부의 지원없는 오늘의 볼쇼이는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러시아가 어떻게 유럽의 발레를 수용, 자기네 것으로 만들었고, 이 과정에 어떤 지원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결론은 자명합니다. 우리도 우리발레를 토착화시켜 세계수준으로 이끌어 올리는데 발레인들은 물론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할 시점입니다.
▲조=무엇보다 볼쇼이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조기교육입니다. 교육과정이 까다롭고 어렵기 그지없는 볼쇼이발레학교 같은 발레학교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또 음악과 마찬가지로 세계의 공통언어인 발레에 대한 정부와 국민들의 지원과 이해도 중요합니다. <정리=유재식기자>

<참석자>홍정희 교수(이화여대·발레), 조승미 교수(한양대·발레), 김채현 교수(서원대·무용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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