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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총·재계, 5년 유예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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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노총과 재계(경총+대한상의)는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복수 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앞으로 5년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2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제10차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한국노총과 재계는 이렇게 입장을 정했다. 함께 회의에 참석한 정부는 공식적인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복수 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1997년부터 도입이 검토됐으나 그간 두 차례 시행이 연기됐다. 이번에 다시 연기되면 2011년 논의하게 된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복수 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는 노사가 고민해 결단한 만큼 이를 평가하며 관계부처.당과 협의하겠다"고 수용 의사를 내비쳤다. 노동부는 6일 최종 입장을 밝힌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내부 검토를 거쳐야 하겠지만 복수노조를 미루는 것은 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노사정 대표들은 이날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 폐지안에도 합의했다. 1953년 노동쟁의조정법에 따라 도입된 직권중재 제도는 53년 만에 사라지게 된다.

노사는 그러나 직권중재 폐지에 따른 대안으로 논의된 대체근로 허용 여부는 이견을 보였다. 한국노총은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필수공익사업장의 범위 안에 항공업계 등을 포함시켜 대체근로를 허용하자는 안을 내놨다. 민주노총은 대체근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재계는 모든 사업장에서 대체근로를 허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부당하게 해고된 근로자 처리 방식에 대해 노사는 부당해고 판정이 날 경우 원직으로 복직시키는 원칙을 유지하되 근로자가 신청하는 경우 복직 대신 돈으로 보상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노사정은 의견차를 보이는 일부 쟁점 사안은 4~6일까지 운영위원회를 통해 논의를 계속하고 합의되는 대로 대표자회의를 소집해 처리키로 했다.

정부는 노사가 합의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들을 7일 입법예고하겠다고 밝혔다. 노사도 여기에 동의했다. 정부는 입법예고 기간(20일) 동안 노사정 간에 추가로 합의가 이뤄지면 그 내용도 반영할 방침이다.

김기찬 기자

[뉴스 분석] 이해관계 맞아 파국 피한 노사
"해야 할 일 미뤄" 질타도

로드맵을 둘러싸고 팽팽하게 맞섰던 노사가 파국을 피해가는 형국이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노심초사했던 노조나,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걱정하던 재계는 두 사안을 '5년 유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음으로써 한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10년째 유예를 거듭했던 두 사안을 관철하려 했던 정부는 부담을 안게 됐다.

기업이 노조 전임자 임금을 주지 않으면 노조가 노조비로 충당해야 한다. 대부분 노조는 재정 상태가 나빠 감당할 여력이 없다. 최악의 경우 노조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반면 재계는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노조끼리 강성경쟁이 벌어지고 돌아가며 파업할 것"이라고 우려해 왔다.

한국노총과 재계는 이런 서로의 걱정을 더는 방식으로 '유예 조치'를 택했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이 이런 합의에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공무원에 대해서는 단결권(가입 대상 확대)을 요구하면서 스스로는 복수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이중적 태도"라는 비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산하 일부 대기업은 복수노조에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중소기업은 전임자에 대한 임금 부담을 계속 안고 가야 해 이에 따른 불만도 나올 전망이다.

또 시한폭탄의 시계는 5년을 기한으로 다시 돌고 있다. 결국 2~3년 뒤에는 이 문제를 놓고 다시 노.사.정 간 격돌이 불가피하다. "노사 관계 개혁을 위해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라면 빨리 처리하는 것이 좋다"며 노사를 질타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사는 직권중재 폐지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데는 민주노총이 반대해 결론을 못 냈다. 이렇게 되면 철도.의료.전기.가스 등 필수공익사업장이 파업에 들어갈 경우 국민은 속수무책으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이 사안은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한국노총과 경영계.정부의 3자 합의로 처리될 것으로 점쳐진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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