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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重 노조위원장 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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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회사 측의 성실한 임단협 교섭을 촉구하며 고공 크레인에서 장기 농성을 벌여오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7일 오전 8시50분쯤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내 조선소 크레인에서 1백29일째 농성 중이던 이 회사 김주익(41)노조위원장이 나일론 끈으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조합원들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金씨는 지난 6월 11일부터 임금인상, 1백50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소송 및 가압류 철회 등을 요구하며 40m 높이의 크레인에서 단신 농성을 벌여왔다.

이 회사 노조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30분쯤 金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휴대전화까지 받지 않아 노조간부들이 올라가 확인한 결과 크레인 운전실과 기계실 사이 기둥에 목을 매 숨져 있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金씨가 가족과 동료들 앞으로 남긴 넉장의 유서가 발견됐다.

金씨는 유서에서 '전면 파업이 시작된 지 50일이 지났지만 회사는 교섭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노동자가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와 정치가는 강성 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고 적었다.

그는 "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나를 포함해 수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 한사람이 죽어서 많은 동지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金씨는 장기간의 농성에도 불구하고 임단협에 임하는 사측의 태도에 변화가 없는 데다 지난 2일 자신을 비롯한 노조간부 6명에 대해 경찰이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서자 심리적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이 마산.울산 공장의 조합원들에게 지난 15일까지 복귀하지 않을 경우 개인별 손배소를 제기하겠다는 통보에 일부 조합원들이 파업 대열을 이탈한 것에도 좌절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 소속 영남지역 사업장의 노조 간부와 한진중공업 노조원 등 5백여명은 이날 오후 4시부터 크레인 앞에서 추모 및 규탄집회를 열고 강경 투쟁 방침을 선언했다.

한편 회사 측은 "원만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부산=김관종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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