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불 교도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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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프랑스 정부가 때아닌 「탈주범 러시」사태를 만나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수감자들이 형무소를 탈출하는 사례가 속출, 지난 한달 반 동안 무려 28명의 죄수들이 교도소 담장을 넘거나 지붕을 뚫고 달아나는데 성공했다.
그 동안에도 간간이 탈주사례가 있었지만 이처럼 짧은 기간에 28명씩이나 되는 많은 죄수들이 대거 탈출하기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12월초 피레네산맥근처에 있는 소도시 라느므장에서 9명의 죄수가 폭발물로 교도소 담장 일부를 부수고 집단 도주하면서 시작된 탈주러시는 프랑스 전국각지의 교도소 및 구치소에서 평균 닷새에 한 건 꼴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탈주방법도 다양해 이송도중 경찰이 잠시 한눈을 파는 틈을 이용, 달아난 사례가 있는가 하면 가짜 권총으로 교도관을 위협, 교도소 정문을 통해 유유히 빠져나간 경우도 있고 형무소 지붕을 뚫고 담장 밖으로 기어나간 사례도 있었다.
프랑스 정부가 발칵 뒤집혀 교도소 경비를 강화한다, 순찰횟수를 늘린다 하면서 법석을 떨었지만 마치 프랑스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거듭되고 있는 탈주사태는 공권력의 위신과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큰 손상을 입히고 있다.
이로 인해 로카르 내각이 심각한 궁지에 몰려 있다.
로카르 총리가 직접 나서 법무·내무·국방 등 관계 장관이 참석한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탈주방지대책을 숙의 하는 한편, 법무부 교도행정국장 등 관계 관을 현지에 보내 탈출동기와 교도소운영의 문제점들을 조사, 보고토록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지난달 말 피에르 아파양즈 법무장관은 서둘러 마련한 5가지탈주방지대책을 발표하고 전국 교도소 및 구치소에 즉각적인 시행을 지시했다.
그러나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고작 ▲교도소 주변 경계를 강화하고 ▲경비에 필요한 장비를 보강하며 ▲특정 교도소에 수감인원이 몰리지 않도록 적절히 분산 수용하라는 등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들이어서 효과가 의문시되고 있다.
프랑스언론들은 아파양즈 장관이 내놓은 대책은「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라고 힐난하고 있다.
프랑스의 우익계 일간지 르피가로는 최근 들어 속출하고 있는 탈주사태의 근본원인은 교화중심의 교도행정이 빚은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하고 그런 식의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대책으로는 탈주사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산부족으로 특수철책 대신 값싼 철조망을 사용하는 바람에 죄수들이 펜치로 철조망을 끊고 달아나고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날 프랑스 교도행정이 안고있는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수감자경비 인력에 대한 예산부족으로 교도관들의 파업이 잇따르고 있는 것도 탈주러시사태의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한햇 동안 프랑스의 1만4천여 교도관들은 임금인상과 인력보강을 요구하며 세 차례나 대대적인 파업을 벌여 교도소 운영이 심각한 위기에 빠진 적이 있었다.
교도행정의 중심을 교화에 두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교도소 자체의 존재이유를 망각해서는 안되지 않겠느냐고 프랑스의 식자층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교도소가 존재하는 첫째이유는 범죄자들을 일단 사회와 격리하는데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파리=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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