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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김정일 초청' 배경과 향후 전망]

중앙일보

입력

"중국 수뇌부가 원하는 것은 김정일(金正日) 위원장과의 대면회담일 것이다."

지난달 말부터 한국과 중국, 일본 내에서 떠돌기 시작한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訪中)설을 예의주시하던 서울과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들은 김 위원장 방중설의 근원을 추적하다 중국 수뇌부의 김 위원장 초청 움직임을 포착했다.

◇ 中 외교부 '난상토론' 결과 = 중국 외교부는 지난달 후반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전개된 중국과 북한 관계를 어떻게 다룰 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전통의 혈맹인 북한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미사일을 발사했고 중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 찬성으로 대응하면서 꼬일대로 꼬인 북중관계를 놓고 의견은 팽팽하게 엇갈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쪽에서는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고 2008년 올림픽까지 개최하기로 한 중국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리더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거듭하는 북한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북한이 차지하는 전략적 중요성과 전통적인 북중관계를 중시한 세력들이 "더이상 북한과의 관계 악화는 이 시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하면서 분위기가 기울었다는 후문이다.

특히 8월26일 북한 외무성 담화 발표를 전후해서 북한 동향을 탐문한 결과 미국이 계속 북한 무시전략을 고수할 경우 북한이 결국 '핵실험'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 회의 분위기를 '관계 개선론'쪽으로 흐르게 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한다.

이날 회의 결과는 곧바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등 수뇌부에 전달됐고 이는 곧 '김정일 위원장 초청 '으로 이어진 듯하다고 한 외교소식통은 전했다.

◇ 형식은 '혈맹 재확인'으로 = 중국은 일단 김 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을 통해 1차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곧 후 주석의 공식초청 의사를 전달하겠다고 설명했을 것이라고 중국 현지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마침 평양 주재 중국 대사가 교체되는 시기다. 우둥허(武東和) 전임 중국 대사가 평양에서 환송연을 가진 것은 지난달 초였고 후임 류샤오밍(劉曉明) 대사는 곧 평양으로 부임할 예정이다.

외교부는 류 신임대사가 평양에서 신임장을 제정하는 기회에 공식적으로 후 주석의 초청의사를 전달하기로 계획을 세웠다는 후문이다. 현재 류 신임대사는 베이징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관계자는 "류 대사가 현재 베이징에 있으며 곧 평양으로 부임하게 된다"고 말했다.

후 주석이 김 위원장을 초청한 것은 과거 '혈맹의 형제국'인 중국과 북한 수뇌부들이 갈등요인을 해소할 때 사용하던 '화해의식'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중관계는 늘 '순망치한'이나 '혈맹'의 수식어가 붙어왔지만 반세기 동안 서로를 '수정주의'니 '교조주의'니 하며 비난하는 등 대립각을 세웠던 적이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김일성 주석이나 마오쩌둥(毛澤東) 주석,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그리고 후에는 덩샤오핑(鄧小平) 최고지도자가 서로 평양이나 베이징에서 만나 '오해'를 풀곤 했다.

◇중국의 속내는 = 하지만 내용 면에서 풀어보면 이번 초청에는 다분히 중국의 전략적 계산이 깔려있어 보인다.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지난해 '9.19 공동성명'을 어렵게 만들어내는 등 외교적 위상을 국제사회에 과시했으나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와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북한의 대결 속에 6자회담이 자칫 실종위기에 처해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뒤 핵실험 의지마저 내비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 영향력이 상당한 것으로 평가받던 중국이 나서지 않을 경우 국제사회로부터 "대북 영향력이 그것 밖에 안되느냐"는 조롱을 들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을 베이징에 초청함으로써 단번에 사태를 풀어보자는 기대를 했음직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중국이 제시한 김위원장의 베이징 초청 시기는 늦어도 9.19 공동성명 1주년 전으로 추론할 수 있다. 중국 현지 소식통은 "이번 초청이 성사된다면 대략 북한 정권 창건 기념일(9일)이 있는 이번주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에서 거론하고 있는 장성택 북한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이나 박재경 인민군 대장의 방중 가능성도 김 위원장의 방중을 위한 사전 의견조율 작업의 일환으로 풀이될 수 있다.

◇북한의 선택은 = 서울이나 중국 현지 소식통들은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BDA(방코델타아시아) 문제에 있어 '양보는 없다'는 입장을 거듭 과시하는데다 오히려 중국 내부 은행들이 북한과 관련된 계좌를 엄격히 관리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없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다.

서울 소식통은 "8.26 북 외무성 담화를 보면 6자회담에 나오고 싶은 의중을 내비치긴 했지만 여전히 미국의 금융제재를 먼저 풀라는 요구를 전제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하는 것을 어쩌면 굴욕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강경 태도를 확인한 중국은 현재 미국을 상대로 금융제재 해제와 관련된 '성의표시'나 '6자회담 테두리내에서 북미 접촉'의 내용성을 보다 확실히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만일 미국을 상대로 한 중국의 노력이 끝내 불발로 그칠 경우 김 위원장의 베이징행은 불발할 수 있다. 일각에서 장성택이나 박재경의 방중 얘기가 나오는 것도 김 위원장을 대신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사일 발사 당시 원자바오 총리의 '요청'도 거부한 북한 수뇌부가 후 주석 명의의 초청마저 거부할 경우 북중 관계가 더이상 복원하기 힘들만큼 험악해져 북한이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그러나 북한이 다시 거부할 경우 역시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중국 수뇌부가 북한의 선택을 유도하기 위해 대북 원조규모를 늘리는 등 '선물공세'를 펼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결국 김 위원장이 "다시 한번 중국을 믿어보겠다"는 차원에서 베이징을 방문해 최소한 손상된 북중관계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서울 외교소식통은 전했다.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관련 첩보를 입수했으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4일부터 대략 1주일 정도 중국에 비교적 오래 체류하는 것도 눈 여겨볼 대목이다.

이 시기에 김 위원장이 방중할 경우 북한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이 김 위원장을 수행하는 형식으로 중국을 방문, 직간접적으로 북미간 의견조율이 시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김 위원장의 방문과 관계없이 김 부상의 방중이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서울.선양=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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