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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없으면 세금 더내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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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내년부터 연말정산 때 ‘무(無)자식’이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쪽으로 세제 개편안이 나왔다. 기본 공제자가 1인이면 100만원, 2인이면 50만원을 세금 부과의 기준이 되는 소득에서 추가 공제해주던 것을 없애는 대신 자녀가 둘이면 50만원, 셋 이상이면 1인당 100만원씩 추가 공제해준다는 것이다.

아이를 많이 둔 가구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자는 다자녀 추가공제 제도의 방향은 맞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해온 소수자 추가공제 제도를 없애겠다는 것은 다자녀 추가공제로 생기는 세수(稅收) 감소분을 벌충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소수자 추가공제 폐지 문제는 연초 대통령의 ‘증세(增稅) 발언’ 이후 거론됐던 방안이기도 하다.

소수자 추가공제 폐지로 세금을 더 내게 되는 경우는 전체 근로자 1162만 명의 37%인 430만 명. 이들은 연간 5500억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 그중에는 자녀를 가질 수 없는 형편이거나 맞벌이를 해야만 먹고 사는 가구가 결코 적지 않다. 이런 터에 세금을 더 내라고? 더구나 가구원 수로 보면 단독·맞벌이 등 소수자 가구는 급증하는 반면 4인 이상 다자녀 가구는 줄어드는 추세다

따지고 보면 5500억원 정도는 평소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면 430만 명을 힘들게 하지 않고서도 해결할 수 있는 규모다. 중복되거나 타당성이 떨어지는 국책사업을 추진하다 감사원에 지적당한 게 어디 한두 건인가? 또 공무원 인건비만 해도 5조원을 늘린 ‘통 큰 정부’가 5500억원을 더 걷자고 독신자 내지 자녀 없는 맞벌이 부부의 ‘얇은 지갑’을 엿봐서야 체면이 서겠는가?

게다가 다자녀 추가공제 제도 시행으로 세금이 줄어드는 봉급생활자는 220만 명, 감세 규모는 2700억원에 머문다. 소수자 추가공제 폐지로 더 거두는 세금(430만 명에 5500억원)이 다자녀 추가공제 시행으로 감면되는 규모(220만 명에 2700억원)보다 큰 데다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봉급생활자가 줄어드는 경우보다 훨씬 많다. 봉급생활자 입장에선 저출산 대책을 내세운 세금 더 거두기 아니냐며 볼멘소리가 당연하다. 이는 단순히 윗돌 빼 아랫돌 괴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증세(增稅)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정부로선 생활비가 많이 드는 다자녀 가구에 더 많은 세제 혜택이 가도록 소득공제 제도를 구조조정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가구원이 많아지면 1인당 기초 생활비는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가며, 미국에도 독신자에 대한 세금우대 제도가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 1∼2인 가구도 주거공간 마련 등 고정비용은 가족이 많은 가구와 비슷하게 들어가므로 1인당 공제액을 높게 해주자는 취지로 소수자 추가공제 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출산장려 대책이 시급해지자 다자녀 가구 지원책에 밀린 것이다.

그렇다면 다자녀 추가공제 제도가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아이를 안 낳거나 적게 낳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자녀 양육과 교육비 부담을 꼽는다. 그런데 제도 변경으로 추가공제 ‘소득’은 100만원 단위로 움직이는 반면 추가공제 ‘세금’은 대부분 10만원 미만이고 많아야 20만원대다. 이 돈으로 과연 더 낳는 자녀의 양육비와 교육비를 댈 수 있을까?

또 저출산의 큰 이유는 기혼 여성의 출산율 하락이라기보다 결혼을 하지 않거나 늦추는 여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세제 개편으로 미혼 근로자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면 결혼기피 현상이 심해져 오히려 저출산을 부추길 소지도 있다.

우리나라는 불과 10년 뒤인 2016∼2017년이면 총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갈수록 심각해질 산업 현장의 인력 부족을 메우려면 인구의 절반인 여성인력을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맞벌이를 홀대하면 보육시설과 육아지원책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에게 경제 활동을 포기하고 출산과 육아에 매달리라는 신호로 비칠 수 있다. 그 결과 지난해 힘들게 50%를 갓 넘어선 여성 취업률 상승 기조가 꺾일 수도 있다. 자칫 저출산은 그대로인 채 여성 취업률만 떨어뜨릴까봐 걱정이다.
양재찬 이코노미스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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