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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조교사 생일잔치(마음의 문을 열자:18)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해직ㆍ현직교사 마음 튼 한자리/「한 교실 두 담임」 그땐 악몽/제자들 눈에 선해… 교단 설날 손꼽아
『차라리 우리는 마음이라도 편하지요. 선생님들 마음 고생에 비하면….』
『하긴 그날 생각만 하면 아이들 앞에 선다는 것이 괴롭지요.』
어색함을 면하기 위한 건배의 의식도 무겁게 가라앉은 방안공기를 쉽게 풀지 못했다.
한 교실 두 교사­.
전교조 해직교사 이종룡씨(34ㆍ서울 수유동)의 생일을 맞아 자리를 함께한 동북고 전ㆍ현직교사 6명.
어깨를 좁혀 겨우 앉은 2평남짓 방 한가운데 생일상에는 시루떡ㆍ미역국ㆍ나물 몇가지와 케이크가 조촐히 차려져 있다.
꼭 5개월만에 갖는 저녁 술자리.
술잔이 몇 순배 돌고 겨울밤이 깊어가면서 앙금은 가라앉고 30대 초반이라는 동년배 의식이 싹튼다.
『한솥밥을 먹으며 정을 나누던 선생님들에게 악수도 건네지 못했으니….』
현직의 최주원교사(33ㆍ수학)가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말들을 풀어놓았다.
『선생님들 개인의 양심을 탓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가혹했던 때였죠.』
이교사도 한구석에 접어두었던 섭섭함을 풀며 최교사와 소주잔을 부딪친다.
이교사 등 11명이 무더기로 해고되면서 해직ㆍ비해직교사간에 인위적인 벽을 쌓은 지난해 8월12일.
『교사는 돈을 받고 금품을 파는 노동자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붉은 머리띠에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은 못마땅하더군요. 용감과 비겁의 양분법을 떠나 제가 설 자리가 없었어요. 하지만 참교육을 위한 순수한 열정만은 존경합니다.』
같은 교육의 이상을 위해 택한 스승의 길. 그러나 참교육을 위한 전교조운동이 순수한 교육차원에 머무르길 바라는 최교사는 동료의 부당한 해고를 막지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졌었다고 했다.
해고방침이 결정되자 이교사 등은 교무실에서 해고철회를 요구하며 1주일간 철야농성을 벌였다. 밤늦게 음료수ㆍ담요 등을 날라다주며 탈진한 동료들을 격려해 주던 최교사 등 동료교사들의 끈끈한 정.
농성도 무위로 끝났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전교조의 출근투쟁이 시작된 개학첫날. 『저의 반에 들어가 보니 고참선생님이 벌써 조회를 하고 계셨지요. 「두 담임」을 본 학생들이 과제물 제출을 누구에게 할까 망설이더군요. 그제야 「해직」이 실감났어요.』
5년여 교직생활중 가장 쓰라린 순간이었다는 송형호교사(31ㆍ영어)는 이날을 마지막으로 교단을 내려섰다.
88년 여름. 송교사의 책상위에 자기반 학생이 남긴 쪽지가 놓여있었다.
「선생님,저 여행가고 싶어요」 「가출하겠습니다」라는 마지막 SOS였다.
반에서 40등,부모는 모두 일에 바빠 가정을 비웠다. 정에 굶주린 이 학생은 자포자기에 바졌다. 마지막 기댈 곳으로 담임인 송교사를 찾고있었다.
『이「버려진」 학생들을 감싸주어야 하는 일이 교사의 또다른 「수업」임을 깨닫게 됐죠.』
일류학원강사를 훌륭한 교사상이라고 믿고 84년 교편을 잡은 이래 내달려온 송교사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고 결국 전교조운동에 동참했다.
『선생의 힘은 백묵끝에서 나온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학생곁을 떠난 선생은 무의미했어요.』
6개월째 실업자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 해직교사들은 때때로 전교조를 벗어나 제자들 곁으로 돌아가고픈 충동이 솟구친다.
『많은 선생님들이 교육환경을 개선해 보자는 전교조주장에 동조하지만 앞에 나설 수 없는 현실때문에 고민하기도 해요.』
재직교사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해직교사들은 요즘 「현실」문제로 고생한다.
동료교사ㆍ선배ㆍ동문들로부터 몇 천원에서 몇만원씩 후원금을 받아 전교조를 꾸려나가는 해직교사들은 월 15만∼25만원씩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새벽1시. 추위속에서 밤은 자꾸만 깊어간다. 그러나 깊은만큼 멀지않은 새벽녘.
『새해엔 교단으로 꼭 돌아오세요.』
제자가 보낸 크리스마스카드 글귀를 되뇌며 이교사의 전세집을 나서는 송교사는 술기운에 흐트러지는 발걸음을 가다듬는다.<고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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