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적자로 돌아서는 건보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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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건강보험이 올해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 한다. 그동안 국고 지원액을 1조원 이상 늘리고 담뱃값을 올린 덕분에 간신히 흑자로 반전됐다가 4년 만에 2000억원의 적자를 보게 된 것이다. 2000년 의약분업과 건보통합 당시의 보험재정 파탄을 떠올리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적자 이유는 정부가 수입을 제대로 가늠하지 않고 돈주머니를 마구 풀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5년부터 암.심장병 환자 부담을 낮추고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등 수십 가지의 진료에 대해 연간 1조원 이상의 보험 혜택을 늘려 왔다. 시민단체나 노동계도 보험 확대에 강력한 압력을 가했다.

정부는 어떻게 돈을 풀지 태스크포스팀까지 만들어 아이디어를 짜냈다. 그 결과 아동 입원진료비 면제를 건강보험이 떠안았다. 보험을 우선 적용해야 하는 항목을 제쳐둔 채 모든 환자에게 생색을 낼 수 있는 소재를 찾다가 식대에 보험을 적용했다. 병원 문턱이 낮아지면 불필요한 이용이 늘게 돼 있는데도 이에 대한 정교한 분석이 안 돼 있고 통제장치가 따라가지 못했다. 건강보험공단 자체 조직진단에서 수백 명의 인력이 남는다고 나올 정도로 운영이 방만한데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수입은 계획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담뱃값을 올리지 못해 올해 1500억원의 구멍이 났고 내년에도 3500억원이 부족하게 됐다. 올 초에는 보험료도 계획만큼 올리지 못했다.

식대 보험 지출이 하반기에 본격화하고 초음파 촬영, 1~3인실 병실료에 보험을 적용하면 지출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그 적자는 보험료나 국고 지원액을 올려 메워야 하는데 이게 다 국민 부담이다.

이런 적자도 일종의 포퓰리즘의 결과다. 수입 생각 안 하고 무조건 혜택만 늘렸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건보가 거덜나는 것도 시간문제다. 국민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순차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선순위를 철저히 계산해야 한다. 수입은 생각하지 않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치적의 하나로 포장하려는 이 정부의 정치적 계산도 적자의 큰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