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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좋은 일자리 있다" 여인이 유혹|「한국판 노예시장」선원 인신매매의 실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전남해안 도서지방을 무대로 한 선원인신매매는「한국판 노예시장」을 연상시키고 있다.
수년 전부터 목포등 전남해안지방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을 유인해와 새우잡이 어선이나 양식장 인부로 팔아 넘기는 사건들이 가끔 잡혔지만 그동안 경찰은 대규모 인신매매단이 배후에 있음을 밝혀내지 못했다.
이 바람에 전남해안지방이 남자인부 인신매매장으로 변했고 노예노동을 방불케 하는 노역장이 되어버렸다.
지난15일 광주북부경찰서에 인신매매혐의로 검거된 임자룡씨 (44·직업안정법위반등 전과21범·목포시산정동1298)를 두목으로 하는 「임사장파」의 범행은 찰거머리와도 같은 인신매매단의 전형적인 수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이 지난해 1월부터 지금까지 매매해 온 피해자는 밝혀진 경우만도 70여명이 넘는다.
경찰은 이들 일당의 피해자는 적어도 1백명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임씨는 전국의 알선책들이 취업을 시켜준다고 꾀어 유인해온 사람들을 한사람에 30만∼50만원씩 주고 넘겨받은 뒤 자신의 집에 감금해 놓고 일당 김종호씨(35)와 이정영씨(32)에게 감시를 하게 했으며 방 한쪽에 화장실을 만들어 놓고 15∼30명을 한꺼번에 수용했다.
임씨등은 피해자들을 20∼30일간 잡아두고 미리 자신들이 피해자들에게 터무니 없이 비싼 값으로 음식과 숙박등을 제공하고 알선책에게 돈까지 지불, 이를 피해자들에게 갚도록 강요해 이들로 하여금 강제노역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모씨의 경우 이렇게 해서 늘어난 빚이 무려 2백만원이나 됐다.
임씨등은 피해자들을 새우잡이 어선이나 양식장등에 팔아 넘길때 선금 명목으로 6개월분의 노임(90만∼1백20만원)을 받아 밀린 빚을 갚는 형식으로 가로채왔다.
범인들은 피해자들에게 빚중 20만∼30만원쯤을 남겨두어 6개월 후에 갚도록 발목을 잡는 수법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전남해안지방에서 이처럼 인신매매단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은 어촌의 일손이 엄청나게 달리는 실정을 인신매매단들이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해안지방이나 섬 지방에서는 수사당국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것도 이들 범죄조직들이 기생할 수 있게 한 요인이다.
이번 남자 인신매매단 사건의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알선책 6명이 모두 40대 초반의 여성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들 여성 알선책들은 전국의 역이나 터미널 등지를 돌며 배회하고 있는 남자들에게 접근, 『목포에서 선원으로 취직시켜주겠다』 거나 기타 술과 음식을 제공하는등 여성이 구사할 수 있는 교묘한 방법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이들 알선책 여인들은 모두 자신들의 본명과 주소등을 숨기고 성만 알려주며 임씨등과 같은 인신매매단에 유인해온 사람들을 돈을 받고 넘겨준 후 잠적해버려 임씨등도 이들을 모른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4월9일 중마도에 팔려 갔다가 구출된 성재수씨(27·경북상주군낙동면)는 『목포에서는 무허가 여인숙에서 30여명의 남자가 엄격한 감시를 받으며 지냈고 섬에서는 하루17시간정도 강제노역을 했지만 한푼도 못 받았다』 고 말했다.
전남도경의 집계를 보면 지난해 전남지방의 섬에는 모두 1천6백41명의 남녀 취업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중 남자 2백59명, 여자 1백21명등 23%정도가 빚 때문에 인질로 잡혀있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전남도경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들 조직을 뿌리뽑기 위해 인부들을 넘겨받아 취업을 시킨 선주들의 명단파악에 나섰으며 선주들에 대해 범죄조직과의 관련여부를 집중 수사할 방침이다.

<광주=위성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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