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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상업금융기관이 시세 좌우|국제환율 어떻게 변동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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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연초부터 국제금융시장에서의 환율시세가 심한 혼조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일 뉴욕외환시장이 올들어 첫거래를 시작하자마자 달러화는 서독 마르크화·일본 엔화등 거의 모든 주요통화에 대해 대폭의 강세를 탔고, 여기에 일본 중앙은행이 개입하자 하룻만에 엔화에 대해서는 약세로 돌아섰으나 마르크화에 대해서는 강세를 꺾지 않았으며, 다시 하룻만에 서독등 주요국이 일제히 시장에 개입하고 미연방준비은행(FRB)이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이번에는 엔·마르크화등에 대해 모두 달러가 폭락하는 사태를 빚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서방선진7개국(G7)은 이 달말 워싱턴에서 긴급 재무장관회의를 갖고 지난해 하반기의 급격한 국제정치, 경제적 환경변화와 관련해 환율·금리등 선진국간의 금융정책협조체제를 새롭게 조정할 예정이어서 각국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한해 내내 좀처럼 꺾이지 않는 달러강세의 행진속에 원화의 엔·마르크화에 대한 2중절상으로 고통을 받았던 우리로서도 그같은 국제금융환경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사실 환율만큼 한치 앞을 제대로 내다보기 힘든 변수도 별로 없다.
권위있는 연구기관으로 가장 빈번히 인용되고 있는 미워턴경제연구소(WEFA)가 지난해 연초 예상했던 89년말의 달러대 엔의 시세는 달러당 1백15엔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엔화의 국제시세는 지난해 연말 달러당 1백43·85엔까지 갔다.
결과적으로 WEFA는 지난해의 달러강세와 엔화약세를 전혀 짚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며 WEFA 아닌 다른 연구기관들에서라도 달러 강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좀더 우세하게 나오기만 했다면 우리도 일찌감치 원화절하를 시작해 지난해의 환율고통을 한결 덜수도 있었단 일이었다.
또 지난해 11월10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었던 만큼 이후 국제금융시장에서 마르크화가 강세를 탓던 것도 역시 예상외의 일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가장 최근 한은이 입수한 전망치들을 보면 WEFA가 올 연말 달러당 1백29엔을 점치고 있는 반면 미 체이스 맨해턴 은행은 달러당 1백57엔을 내다보고 있다.
엔화는 현재 달러당 1백44엔 수준에 가 있으니 WEFA와 체이스 맨해턴은 달러약세로의 반전과 달러강세의 지속이라는 정반대의 예측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가지 흥미있는 것은 WEFA나 체이스 맨해턴외에 골드먼 삭스, 파리바, 샐러먼 브러더스, 제임스 카펠등 여타주요 연구·금융기관들의 환율전망치들을 모두 놓고 보면 올해 중 달러화의 엔화에 대한 약세반전, 마르크화에 대한 강세회복이 절대 다수의견이라는 점이다.
유일하게 나온 반대의견으로는 앞서 예를 든 체이스 맨해턴이 달러의 엔에 대한 강세지속을 내다보고 있고, 또 샐러먼 브러더스만이 마르크의 달러에 대한 강세지속을 예측하고 있다.
다분히 투기적이고 폭발적인 국제외환시장을 앞에 놓고 「다수결」로 장세전망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선진국의 실물경제동향,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정책등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분석방법의 입장에서 보면 「다수의견」이 일견 합리적이긴 하다.
올해 미국 경제가 성강이 둔화될 것이며 무역·재정적자의 개선도 미흡할 것이라는 분석이 일반론인데다가 이에 따라 미 연준이 올해에도 계속해서 금리를 내려가며 물가가 크게 위협받지 않는 한 경기부양에 나설 것이고, 따라서 그간 달러강세의 주요한 원인이었던 미국과 다른 선진국간의 금리격차가 상당히 축소될 것이라는 분석인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금리는 지난해 연초부터 하락세를 나타내 우량기업 대출금리는 연초의 11·5%수준에서 세차례의 인하 끝에 현재 10·5% 수준에 이르렀고, 반면 일본과 서독은 중앙은행의 재할인율·공정할인율을 지난해 연초의 2·5%, 3·5%에서 각각 4·25%, 6%수준까지 계속 올려왔다.
일본이나 서독은 머니게임으로 미국의 경상수지적자나 메워주면서 자국의 통화가 약세를 지속해 산업구조조정노력이 느슨해지거나 하는 일들을 바라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협조, 자국의 금리를 올려 더 이상의 달러강세를 막으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실물경제의 동향이나 주요국의 금리격차축소노력등을 보면 여유자산을 달러로 갖고있을 때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어 달러화가 엔화에 대해 약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분석인 것이다.
세계도처에서 일본 제품을 파고들어야 하는 우리로서는 미상불 반가운 예측이 아닐 수 없다.
엔화가 강세를 타면 탈수록 우리는 미국과의 환율마찰도 줄이면서 수출에 숨통을 틔우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지난해 대표적으로 빗나가고만 WEFA의 예측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며, 또 사실 지난해 미·일·서독간의 금리격차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미국의 적자와 일본·서독의 흑자가 지속되는 무역환경 속에서도 달러강세는 꺽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같은 분석의 타당성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현재의 국제 외환시장 장세가 「실물장세」아닌 「금융장세」며, 따라서 올해도 달러약세는 기대하기 힘들고 설혹 달러약세가 나타나더라도 극히 소폭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소수의견」은 이래서 나오게 되고 또 귀를 기울일만한 가치가 있다.
한마디로 경제성장이니, 무역적자니, 금리수준이니 하는 고리타분한 변수들 때문에 국제환율시세가 형성되기보다는 국제금융시장에서의 「큰손」들이 어떤 자산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환율이 춤을 추게 되어있고, 그 「큰손」들은 바로 일본의 상업금융기관들이라는 것이다.
동경은행조사부자료에 따르면 일본상업은행들의 국제자산은 이미 지난 88년말 1조7천5백64억달러로 전세계 17개국은행들의 국제자산 4조5천9백82억달러의 38%를 차지, 2위인 미국은행들의 자산비중 15% (6천7백52억달러)를 저만치 따돌리고 단연 절대우위를 확보했다.
중앙은행들이 수시로 외환시장에 개입한다지만 88년말 현재 산유국·개도국을 포함한 서방주요국들의 금을 제외한 준비자산의 총계가 7천2백41억달러에 불과한 것을 보면 중앙은행들도 상업금융기관들에 비해 시장을 좌우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같이 거대한 큰손인 일본 상업금융기관들이 그들의 여유자산을 어떻게 「배분투자」 하느냐가 국제환율시세를 좌우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되고 투자대상들을 돌아보면 아직도 일본의 달러화 자산에 대한 선호는 여전할 것이라는 관측도 자연스레 나오게 돼있다.
또 금리차가 축소됐다지만 아직도 유러시장에서의 달러화표시 금리는 엔화표시 금리보다 1% 포인트 이상 높고, EC통합·동서독교류등에 대한 심리적인 기대감이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마르크화의 강세도 계속 지탱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여기에다 결정적인 것은 일본의 달러자산은 최근 얼추 1조4천억∼1조5천억달러로 전체 대외자산의 70∼80%가 될만큼 이미 깊숙히 달러에 물려있기 때문에 달러의 급속한 약세를 일본이 가만히 내버려 둘리가 없다.
한마디로 경제성장이니, 금리니 따지기 이전에 투기성 강한 머니게임의 생리로 보아 달러의 약세는 섣불리 기대하기 힘들다는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당장 지난해 달러화의 향방에 대한 예측이 빗나가 큰 곤욕을 치렀던 우리의 현실을 돌이켜 볼 때, 벌써부터 엇갈리는 올 국제환율동향에 대한 각 기관의 예상은 결코 한가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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