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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함께,그리고 다같이/차하순(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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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세기의 마지막 10년­과연 우리에게는 앞으로의 10년이 어떠한 시대가 될 것인가. 우리가 중요시하는 세가지 커다란 과제는 통일ㆍ민주화ㆍ경제발전일 것임이 틀임없다. 통일은 어떻게,언제 실현되는가. 민주화는 순조롭게 진전되며 경제발전은 지속될 것인가.
파란만장한 80년대를 이제 막 벗어난 우리에게 당장은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이 더 많아 보인다. 정치적으로는 비록 혁명을 피하는 대타협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과거의 찌꺼기를 말끔히 청산하지 않은 한국정치의 앞날은 그다지 평탄하지 않을 것 같다. 통일에의 소망은 무모하리만큼 엉뚱한 시도들을 서두르게 했지만 단시일내로 통일을 앞당길 대변화가 당장은 일어날 것 같지 않다.
○밝지만 않은 90년대
경제적으로는 더 큰 난관이 있다. 성장은 계속된다지만 경상수지 증가율은 전년도의 29.7%에서 3.6%로 대폭 줄었고 문닫는 기업의 수도 늘어났다. 학력별 임금차가 해소되는 추세가 있다고는 하지만 도시ㆍ농촌간의 소득격차는 더욱 더 벌어졌다.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10명중 8명은 우리 경제가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렇게 볼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난국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실마리는 뭐니해도 정치와 경제에서 찾지않을 수 없다. 한국민은 통일의 실현과 민주화의 정착,그리고 경제적 풍요사회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대전제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것은 공동체의식의 회복이다. 우리 모두가 다같이 하나의 국민이라는 자각없이는 이 난국은 풀기 어렵다.
남녀노소,학생들과 시민,노동자ㆍ농민,운동권과 재야단체,정당인들이나 집권층 할 것 없이 이 모든 사람들은 다같이 하나의 배를 타고 항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는 지금 풍랑 속에서 위기를 맞고있다. 이때 우리는 아무쪼록 마음을 한결같이 모으고 힘을 합쳐 살길을 찾아야 한다.
본래 한국인은 「우리」를 강조한 나머지 자기 처를 「우리」마누라라고 할정도다. 이러한 「우리」강조 분위기에 젖어 살아 온 반동인지는 몰라도 요즘 세대는 상대적으로 「나」를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개인주의나 개성의 주장도 덮어 놓고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란 나만이 아닌 나와 남들과의 만남이요,모임이다. 나만큼 남도 존재가치를 갖고 있고 그 점에서 「우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함께」,그리고 「다같이」 살아야 할 그러한 우리인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식은 과거의 권위주의 시대에서 처럼 공권적 조직을 통해 위로부터 지시ㆍ조작하는 집단의식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위기와 난국을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국민 각자의 자발적인 화합이다.
요새 논자들 사이에는 이분법적 분류가 유행하는 것 같다. 즉,그것은 국민을 민중과 비민중으로 갈라 놓는 사고방식이다. 민중이라는 말은 자주 애용되면서도 그 내용은 그다지 명확치 않다. 그런데도 이 말이 무슨 마력이나 지니고 있는지,웬만한 사람은 자신이 그 「민중」에 포함되고 있는가를 궁금히 여기는 것이다.
민중이란 루소가 말했을 때에는 모든 국민을 지칭했는데 지금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이 말이 일부 계층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이분법은 사실과 맞지않는 추상적 논리일 뿐 아니라 「우리」라는 국민적 유대를 파괴하는 사고방식이다.
○편 가르기 보다는…
만일 이와 같이 우리 스스로를 분열시키고 서로간에 장벽을 쌓아 갈라 놓는다면 남북분단의 철조망을 치워버리는 민족적 통일은 어찌 가능하겠는가. 지금은 우리 서로가 갈라설 때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리끼리의 융화가 절실한 때다.
다른말로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이나 잘사는 사람들이나 모두 하나의 국민이다. 못사는 사람들이 우선 잘살게되는 길은 열려야 하지만 가진자 역시 존경받으면서 사는 사회가 돼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기본원리는 노력에 바탕을 둔 개인적 성공을 미덕으로 보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성실히 일해 돈을 번다면 그 결과는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올 것이다.
가진 자의 도덕성은 따져 물어야 하지만 소유 그 자체를 백안시할 수는 없다. 우리의 사회는 누구든지 근면하다면 얼마든지 성공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할 사회다. 바로 이 원리가 무시된 소련이나 동유럽에서 사람들은 공산주의에 등을 돌리려고 하지 않는가.
○같은 배에 탄 운명
근자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60.6%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의 수는 해마다 증가일로에 있으므로 결국 한국은 중산층 사회를 향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을 중산층으로 끌어 올리도록 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현재의 중산층의 정당한 의욕도 꺾지 말아야 한다. 못사는 사람들에게는 부의 형평배분을 하고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조세부담을 지게 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모두 함께 90년대의 살기좋은 사회를 향해 다같이 힘을 합치는 것이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물가안정,노사분규의 해결,수출증대등과 같은 경제적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10명중 9명이라는 압도적 다수가 각계각층의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즉,생산성 향상의 범위 안에서 노임은 억제되기를 바라는 한편 고소득층의 조세부담이 증가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90년대의 국민적 소망인 민족적통일,민주화의 정착,경제적 발전등을 위해 시급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식의 회복이다.
노동자들과 농민,가진자와 못가진자,학생들과 재야 운동권,정치인들과 집권계층­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국민이다.
우리는 모두 함께 하나의 배를 타고 같은 역사적 목표를 향해 나가고 있다. 정치적 태풍과 경제적 격랑속에서 뒤뚱거리는 「우리」라는 배를 합심해 안정시키도록 하자. 모두 함께 타고 있는 이배가 가라앉기를 원치 않는다면.<서강대부총장ㆍ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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