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교육부에 애원합니다 국제중 문제 맡겨줬으면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교육부나 청와대에서 신중을 기해 이런 건 그저 지역청에 맡겨줬으면 좋겠는데…."

공정택(사진) 서울시 교육감이 23일 오후 이런 하소연을 했다.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다. 그는 힘에 겨운 표정으로 "애원을 드리겠다" "앞으로 어렵겠다" "몹시 고달프다"라는 표현을 했다. 72세의 원로 교육자인 공 교육감을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건 국제중학교 설립 문제다. 학교법인 영훈재단과 대원재단이 올해초 각각 국제중학교를 설립하겠다고 신청했다. 국제화 시대에 조기 영어교육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중은 경기도와 부산에 한개씩 있다. 지난해 문을 연 가평 청심국제중의 입학 경쟁률은 21대 1이었다. 그만큼 인기다. 학부모들은 "조기 유학을 보내 돈을 많이 쓰는 것보다는 영어로 수업하는 국제중에 보내는 게 낫다"고 말한다.

공 교육감은 교육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국제중이 필요하다고 본다. 학교 설립을 인가할 수 있는 법적 권한도 그에게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제동을 걸고 있다. 그의 발언을 보면 청와대도 이 문제에 간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간청하는 교육감=공 교육감은 기자간담회에서 "(인가권은) 서울시교육청이 갖고 있지만 교육부와 조율해 잘 통과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립형 사립고도 안 된다고 했다가 꾸준하게 노력하고 절충해 은평.길음 뉴타운에 들어설 수 있도록 조율하지 않았느냐"고 덧붙였다. 권한은 자신에게 있지만 '상전'격인 교육부의 눈치를 봐야 하고 그를 위해 인내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밝힌 것이다.

?반나절 만의 항복=공 교육감은 이날 낮에는 "다음달 서울시 교육위원회가 개원하면 영훈국제중 설립 승인 건을 상정해 내년 3월 개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원국제중은 학교 건물 신축 문제 때문에 개교가 1년쯤 늦어진다고 했다.

그동안은 교육위원(15명) 중 7명이 전교조 성향이어서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전교조 후보가 2명밖에 당선되지 않아 공 교육감으로선 자신의 정책을 구체화할 좋은 기회였다. 공 교육감은 반나절 만에 "교육부와 잘 조율해 하겠다"며 발을 뺐다. 입장 변화에 대한 이유를 밝히진 않았다.

"교육부의 반대가 있었느냐"란 기자들의 질문에 공 교육감은 "내가 강해서 나한테는 전화를 못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날 오후 "우리가 반대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우형식 지방교육지원국장은 "교육감이 설립하겠다고 한다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국제중과 같은) 특성화중학교 설립 권한을 교육부가 되찾아 오거나 특성화중 설립 때 교육부와 사전 협의토록 하는 내용으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바꾸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예 법을 바꿔 교육감의 권한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고정애.이원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