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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취재 2주일의 단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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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화관광부가 떴다?

역설로 얘기를 시작한다. 사실 요즘 문화부는 '죽을 맛'이다. 유진룡 전 차관이 8일 청와대의 인사 청탁 거부로 돌연 경질되더니 최근에는 '바다이야기'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벌써 2주일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문화부의 한 서기관은 "문화부 설립 이후 '최초의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박지원 장관이 대북 특사로 활동하며 막강 파워를 보여준 적은 있으나 부내 고유 업무로 요즘 같은 주목을 받은 건 처음이라고 했다.

또 한번의 역설. 조기 낙마했던 유진룡 전 차관은 문화부 직원들에게 통쾌한 대리만족을 안겨주었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의 공무원상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타 부처 직원들도 정권의 눈치를 살펴야 했던 공무원의 자존심을 지켜냈다고 평했을 정도다. 원칙.소신을 강조했던 그가 차관에까지 오른 것을 두고 '대한민국, 발전했다'라는 농담도 돌았다.

그러나 바다이야기 파문은 달랐다. 문화부에는 의혹의 눈총이 집중됐다. '도박공화국'의 빌미를 제공한 온상으로 지목됐다.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 문화부의 정책 실패를 따지며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까지 질책했다. 문화부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도박공화국의 책임이 문화부에만 있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게임기를 불법 변.개조한 게임업자들, 그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사법당국, 범정부 차원의 늑장 대응을 탓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부는 도박성 게임 대책에서 분명 실기(失機)를 했다. 문화를 진흥한다던 게임장 상품권은 사행성을 부추기는 기폭제로 악용돼왔다. 이 같은 현실을 오래전부터 훤하게 꿰고 있었음에도 적확한 처방전을 내놓지 못한 책임은 누구에게도 돌릴 수 없다.

기자는 바다이야기와 관련된 여러 사안을 확인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문화부 직원과 접촉해야 했다. 그러나 관련 공무원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곤란한 대답을 피하려는 듯 전화를 받지 않는 직원이 적지 않았고, 사태가 여기까지 악화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는 궁색한 변명도 있었다.

각종 이권과 관련된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우리의 잘못이 컸다"는 솔직한 답변은 문화부 어디에서도 듣기 어려웠다. 상품권 발행사조차 "여권 실세와 정부에 공공연하게 청탁했다"고 털어놓는데도 문화부는 "결코 그런 적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다시 역설로 얘기를 맺는다. 문화부는 지난 2주일 존재가치를 분명히 각인시켰다. 아리랑TV.한국영상자료원.영상물등급위원회.한국게임산업개발원 등 평소 이름도 생소했던 산하기관들이 하는 일도 널리 알려졌다.

사실 문화 분야를 10년 넘게 취재해온 기자도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이 문화부 산하기관인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검은 바지에 흰 구두 차림의 '형님'들이 영상물등급위에 몰려들어 협박을 일삼았던 사실도 처음 들었다. 문화부가 교육부.재정경제부 못지않게 생활밀착형 부서라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바다이야기를 퇴출시키겠다는 김명곤 장관의 선언은 진작 나왔어야 했다.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열어갈 문화부는 예술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도 꼼꼼히 챙겨야 할 거대 부서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독일 역사학자 볼프강 라인하르트는 '거짓말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하루에도 200번이나 거짓말을 하지만 진실은 아직 우리 민주주의 사회에서 실종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바다이야기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지금 "로비는 없었다"는 문화부(관련기관)의 주장이 진실로 밝혀지길 바랄 뿐이다. 국민은 더 이상 '생선횟집'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박정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