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가 오히려 사행성 조장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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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희 전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이 22일 서울 영등포 놀이미디어교육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화부가 영등위에 사행성 게임의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고 주장하며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게임물에 대해 문화관광부가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심의기준 완화를 요구하며 사행성을 조장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권장희(40) 전 영등위원은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화부가 영등위에 사행성 관련 규제 완화를 꾸준히 요구하면서 심지어 어린이용 게임기에도 상품권을 쓸 수 있도록 했다"며 2004년 5월 10일 문화부가 영등위에 보낸 공문을 공개했다.

당시 문화부 김용삼 게임음반과장이 영등위원장에게 보낸 이 공문의 제목은 '게임제공업용 게임물 등급 분류 기준 개정안에 대한 의견 제출'이다. 공문의 주내용은 '게임제공업용 주요 게임류에 대한 세부 규정(안) 검토 의견'으로 영등위의 규정안에 대한 문화부의 수정안을 제시하고 있다.

2004년 2~5월에 문화부가 다섯 차례에 걸쳐 사행성 게임물에 대한 심의 강화를 요구했다는 주장은 이로써 설득력을 잃게 됐다. 문화부는 이날 해명서를 내고 "해당 수정안은 규정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중복규정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문화부가 사행성 조장"=권 전 위원은 "영등위가 최고 배당률을 20배로 제한한 것을 문화부가 삭제토록 하고 100배까지 가능하도록 요구했다"고 말했다. 영등위는 게임시간이 4초 정도로 짧으면 경품한도를 1000원으로 제한하려고 했지만 문화부는 일률적으로 2만원으로 해야 한다고 맞섰다. 2만원은 문화부 경품지급기준 고시에서 최대한도로 정한 금액이다. 이 부분은 결국 문화부 요구대로 이뤄졌다. 문화부는 "게임 진행시간에 따라 배당률을 따로 계산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단속 등의 사후관리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상품권이 나온 뒤 잔여점수도 문제가 됐다. 영등위는 잔여점수 누적을 금지하려 했지만 문화부는 다음 게임진행을 위해서라면 허용하도록 요구해 관철했다. 결과적으로 연타 기능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바다이야기' 등의 불법 개.변조를 쉽게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에 대해 문화부는 해명서에서 "영등위안은 불필요하거나 중복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문화부는 업계 의견만 반영"=권 전 위원은 "문화부가 경찰청 의견, 민간단체 의견을 균형되게 수렴해 영등위에 알려와야 할 텐데, 매번 게임업계 의견과 일치된 주장만 펼쳐 왔다"며 "도박기계를 포함한 게임산업의 신장률이 높아진 부분만 자랑스레 발표하기 바빴다"고 꼬집었다.

권 전 위원이 공개한 공문에서 문화부는 영등위의 심의 규정 개정안 중 네트워크 게임의 연결대수 제한(60대)도 삭제를 권고했다. 영등위 개정안은 스크린 경마 등에서 한번에 지나치게 많은 기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돼 사행성이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에 대해 문화부는 "상위 규정에 이미 네트워크 연결을 제한하는 내용이 있다"며 "영등위안으로는 오히려 사행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고 주장했다.

◆ "부실 심의는 없어"=게임물 부실심의 의혹에 대해 권 전 위원은 "나의 잘못은 불법 개.변조를 막을 사후대책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심의를 안 하겠다고 폭탄선언하지 않은 죄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본업이 있는 일부 위원이 심의에 지각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일부 위원은 오히려 일찍 출석해 검토하기도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홍수현.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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