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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⑦ 소설- 은희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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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Level-1: 다이어트 정보

소설은 일견, 비만 남성이 6주일 만에 12㎏을 감량하는 이야기다. 그렇게 읽힐 수도 있다. 서사의 대부분이 다이어트 얘기고, 곳곳에 배치된 다이어트 정보도 제법 쏠쏠하다. 개중에 몇 가지 정보를 인용한다.

-지방은 탄수화물 없이는 저장되지 않는다.

-곡물은 설탕 다음으로 손쉽게 에너지가 된다.

-뇌는 자신이 쓸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내장에 포도당을 비축하라고 명령한다. 위가 다 찬 다음에도 3분이 지나면 뇌는 다시 명령을 내린다.

흥미로운 정보는 또 있다. 소설에 따르면, 과식은 인간의 몸에 디자인된 유전적인 결함이다. 빙하기의 선조는 오랜 기다림 끝에 먹을 것을 만나면 과식을 했다. 다음번 궁핍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과식하는 것도 살아남는 능력에 해당된다. 꽤 그럴 듯한 설명이다.

▶Level-2: 밥의 철학

감량에 돌입한 나는 밥상머리에서 어머니와 부딪친다. 어쩔 수 없는 갈등이다. 어머니란 본래 자식을 먹이는 일에서 가치를 찾는 존재다. 거기에 어머니의 보릿고개 타령이 더해진다. 이에 따라 모자(母子)의 대립은, 곡기(穀氣)의 생존철학과 영양소의 경제학을 각각 대표한다.

어머니가 "그 시절엔 굶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건 다 했어"라고 따지면 나는 "굶어 죽는 시절은 지났다"고 대꾸한다. 어머니의 절절한 체험에 맞서기 위해, 나는 미국이 1년에 체형관리와 다이어트에 쏟아붓는 돈이 몇 십억 달러가 넘는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뚱보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상도 소설의 주요 테마다. 뚱보의 설움을 드러내는 여러 구절 가운데 대표적인 하나를 옮긴다. '뚱뚱한 사람은 몸집이 커서 눈에 잘 띄는 게 아니다. 뭔가 자신들과는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에 시선이 멈추는 것이다.'

▶Level-3: 아버지 그리고 나

소설은 결국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나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 그러나 품위있는 아버지, 그래서 뚱뚱한 나하곤 어울리지 않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아버지는 다이어트의 원인이자 목표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작가는 한참을 돌아서 온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서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아버지가 영영 가시기 전에 번듯한 아들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였다. '잘못 태어난 아들'이지만, 한 번이라도 떳떳한 자식으로서 당신 앞에 서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막판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 반전에 관한 힌트는 앞서 열거한 다이어트 정보 중에 있다. 피붙이는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피붙이는 누가 뭐래도 피붙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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