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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노동자「정년 판결」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33년만에 일반 육체 근로자들의 가동연한을 55세 이상으로 상향조정토록 한 대법원의 판례 변경은 보수성이 강한 법원이 사회변화추세를 현실감 있게 수용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 대법원의 이번 판례 변경에 따라 공무원·회사원처럼 일정한 고용계약 아래서 급여를 받는 사람을 제외한 무직자·일용 노동자들은 교통사고를 비롯한 각종 손해배상 사건에서 종전보다 더 많은 배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이번 판결은 대부분 55세로 되어있는 일반 기업체의 정년규정을 상향조정하도록 유도하게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종전판례에 따라 개인택시 운전사의 가동연한을 55세로 인정한 이번 사건을 파기 환송하면서 구체적 가동 연한은 다시 원심인 대구 고법이 산정하도록 했으나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이 60세로 상향조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법원이 33년만에 종전판례를 변경한 것은 언뜻 혁명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최근 몇 년 전부터 법조계에서 논란이 일어왔고 하급심에서도 가끔 육체 노동자를 비롯, 농업·상업 등 자유직업 종사자들의 가동연한을 60세로 인정한 판결이 있었다.
87년 서울고법 민사13부는 양계업에 종사하다 교통사고로 숨진 강모씨(경기도 화성군) 유족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강씨의 가동연한을 60세로 인정한 판결을 내렸고 당시 법조계에서는 대부분 긍정적 반응을 보였었다.
86년10월 대한변협은 대법원에『우리 국민의 평균 수명이 갈수록 늘고 건강도 크게 향상된데다 현재 농업종사자들의 대부분이 고령자인 점을 감안, 농업 종사자들의 가동 연한을 최소한 65세로 올려야 한다』는 건의서를 내기도 했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문에서『86년 개정된 공무원 임용령에 따라 기능직 공무원 중 육체노동을 주로 하는 철도원·토목원·건축원·기계원 등의 정년도 55세에서 58세로 연장되었고 국민연금 법상 노동능력을 상실한 노령자에게 지급되는 노령연금의 지급대상 연령도 갱내 작업광원과 어로작업 선원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만60세로 규정되었으므로 육체 노동자의 가동 연한을 55세로 인정한 판례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국민평균 수명이 60년대의 남자 54·92세, 여자 60·99세에서 81년 남자 63세·여자 69세, 88년 남자 66세·여자 74·5세로 늘어난 것이 이번 판례변경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대법원은 또 육체노동자의 구체적 가동 연한은 국민 평균 여명과 기능직 공무원의 정년만으로는 정할 수 없다며 사실 심(대법원은 법률심)인 1, 2심에서 평균여명, 기능직 공무원 정년 외에 연령별 근로자 인구수, 취업률 또는 근로 참가율 및 직종별 근로조건과 정년제한 등을 모두참작하고 개별 손해배상 사건 피해자의 연령·직업·경력·건강상태 등 구체적 사정을 고려, 가동연한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육체 노동자의 정년은 앞으로 사실심은 물론 법률심인 대법원이 내리는 개개사건의 판결을 통해 일정한 판례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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