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도박중독 빠뜨려 놓고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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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오락실의 경품용 상품권 발행 규모가 한해 27조원에 달하고 있다. 상품권 발행업체만 19곳이나 된다. 성인오락실에서는 현금으로 바꿔주면서 액면가의 10%를 수수료로 떼고 있다. 신인섭 기자

"이런 ××, 또 물 건너갔네."

20일 오후 서울 금천구의 한 성인오락실. '바다이야기'를 즐기던 이모(41)씨가 연거푸 욕설을 내뱉었다. 한 시간째 기다리던 '고래'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이 게임에서 고래가 느리게 지나가면 '잭팟'이 터진다. 이씨는 아예 오락이 자동으로 진행되도록 버튼 위에 재떨이를 올려놓고 있었다. 그는 "버튼을 고정시킨 채 화면만 쳐다보는 게 하루 일과"라며 "오늘만 50만원을 잃었다"고 말했다.

대낮인데도 오락실은 40여 명의 손님들로 북적였다. 입구엔 대기표를 받아든 10여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이야기로 세상이 시끄럽지만 이곳에선 먼 나라 얘기에 불과했다. 이들은 대부분 1만원짜리 수십 장을 들고 게임에 빠져 있었다. 6개월 동안 400만원을 잃었다는 박모(35)씨는 "나 같은 서민들을 도박 중독에 빠뜨려 놓고 이제서야 대책을 세운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말했다.

◆ '도박'으로 인기몰이=바다이야기는 출시 한 달 만에 1000여 대 이상을 판매하며 성인오락기 시장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현재 전국 1만5000여 성인오락실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4만5000여 대가 팔렸다.

이 오락이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법정 경품 한도액인 2만원을 넘어 수백만원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예시'와 '연타'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게임 도중 대형 화면의 바닷속에 갑자기 어둠이 깃들면 곧이어 잭팟이 터진다는 뜻(예시)이다. 특히 잿팟이 연속으로 터질 경우(연타) 최대 25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다.

바다이야기는 이 같은 높은 사행성으로 성공을 이어갔다. 물론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심의에선 '게임당 4초 미만, 경품 2만원 초과, 시간당 이용금액 9만원 초과' 등 이른바 '4-9-2 룰(rule)'에 저촉되지 않아 등급 분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업자들은 현장에서 게임기를 불법 개조해 예시.연타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 한 성인오락실 관계자는 "바다이야기는 기계식이 아닌 전자식이어서 프로그램을 조작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승률 조작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 꼬리 무는 의혹들=바다이야기는 문화관광부의 거듭된 사행성 게임기 규제 강화 방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제재 없이 심의를 통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게임은 2002년 2월 허가된 경품용 상품권 제도를 업고 대박을 터뜨렸다. 이 제도는 게임장을 도박장으로 변질시킨 주범으로 꼽힌다. 상당수 업소에서 인근에 교환소를 두고 상품권을 현금으로 교환해 주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시장 규모가 20조~30조원대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정권 실세 개입설 등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정강현 기자<foneo@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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