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26조원 넘는 '경품 상품권' 일반인 사행심 도구로 전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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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장에 상품권이 도입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2002년 2월 문화관광부는 게임장 경품 취급 고시를 내고, 문화상품권.도서상품권 두 종을 게임장 경품으로 허용했다.

게임장에 상품권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두 곳에서 제기됐다. 게임장 관계자들은 중국산 인형.의류.장난감 등 조악한 경품에 불만이 큰 이용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선 '유가증권'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화.도서상품권 관계자들도 게임 경품으로 주는 상품권이 도서.영화 등 문화계 활성화에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문화부는 이런 의견들을 고려해 게임장 내 상품권 유통을 허용했다.

하지만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소위 '딱지'로 불리는 게임장 전용 상품권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게임기기 제작사, 게임장 운영자 등이 앞다퉈 상품권을 내놓았다.

특히 1999년 상품권법이 폐지되면서 상품권은 누구나 발행할 수 있게 됐다. 게임장 주변에 상품권을 현금으로 할인하는 불법영업이 기승을 부려 '딱지'도 100종 가까이로 늘어났다. 문화산업 진흥 명목으로 도입된 게임장 상품권이 일반인의 사행심을 부추기는 '도구'로 변한 것이다. 문화부는 지난해 8월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상품권을 '지정제'로 전환했다. 가맹점 수, 지급보증 능력 등 여건을 갖춘 업체에만 게임장 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처음 8종이었던 경품용 상품권은 현재 19종으로 늘어난 상태다.

하지만 '바다이야기' 등 도박성 게임이 속속 등장하고 지정 상품권도 게임장 주변에서 여전히 할인되면서 사행성 논란은 더욱 확대됐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 김광열씨는 "지난해 8월부터 올 상반기까지 발행된 경품용 상품권만 26조원에 이르고 '딱지 상품권'을 합하면 액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이 부작용이 커지자 고위당정정책조정회의는 지난달 27일 게임장 상품권을 내년 4월께 없애기로 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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