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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생활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문학의 일반화는 문학의 주체가 일반 대중이어야 한다는 말과는 구별해야 한다. 또한 이것은 그동안 문단 일각에서 거론되는 문학주체 논의와도 구별해서 이해되어야할 성질의 것이다.
문학의 일반화는 차라리 문학의 생활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문학주체인 시인·작가들이 삶과 현실, 그리고 존재에 대해 탐구하여 혈흔이 번진 자신의 언어로 형상화한 작품을 보다 광범위하게 읽히게 할 수 없는가의 문제를 언제나 생각하게 한다.
작품이 모든 사람을 감동으로 감싸안아 괴롭지만 새로운 성찰과 인식에로 눈떠가게 할 수 있을 때 문학의 일반화는 성취된다. 문학이 생활 속에 살아있는 지혜와 슬기의 원천이 되고 영혼을 밝혀주는 삶 등불이 되는 것이다.
이때 좋은 작품의 생산은 반드시 전제되어야할 조건이다. 그리고 그같은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의 역할이 무엇보다 먼저 중요해 진다.
문학말고도 일컬어 고급 문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음악과 미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일반인들의 생활과 무엇보다 밀접히 관계하는 신문이 갈수록 이같은 정보를 축소해가고 있는 듯 함은 안타까운 일이다.
가령 신문지면의 구성에서 문학예술에의 항목과 스포츠에 대한 것을 비교해 보면 사정은 분명히 드러난다.
스포츠 정보만을 다루는 전문 일간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은 매일 스포츠에 관한 정보를 한 면씩 제작하고있다. 젊은 청년이 세계적인 기록을 세우거나, 연봉의 인상을 두고 티격태격하는 프로선수들에 대한 정보와 평생을 두고 확고한 작가의 작품에 관한 정보가 같은 비중으로 일반인들에게 전달되고 있다고 신문을 보는 사람은 누구도 자신있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일반대중이 원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적절한 대응 못지 않게 그들이 바라는 것에 비판적으로 적응하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말하자면 시류에 편승하는 것 못지 않게 인간존재의 참모습, 바람직한 삶과 그 터전인 현실을 창출할 수 있도록 일반 대중을 정신적으로 이끌어 가는 일도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란 판단이다.
문학의 일반화란 문학의 생활화이면서 동시에 보다 풍요롭고 보람찬 삶에로의 정신적 눈뜸을 능동적으로 행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튼튼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인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건전한 정신이 전제되지 않는 튼튼한 몸은 우리의 삶을 필경은 건조하고 척박하게 할 것이다.
원고료 지원의 지급방법 문제로 문단이 벌집 쑤신 듯 설왕설래하는 그 지원금의 액수가 얼마인가와 기업들이 프로구단을 운영하며 선수들의 스카우트에 드는 비용이 얼마인가를 비교해보면 이 시대 가치의 무게 등이 너무 한 목으로 치우친 듯 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른바 균형감각의 부재다.
포악해진 범죄가 날이 갈수록 늘고, 세상이 너무 각박해져 미풍양속이 말 그대로 피폐해져 가는 것은 결국 물신주의에서 비롯하는 정신의 황폐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 극복을 정신주의를 지향하는 문학의 생활화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문학정보의 제공을 대중 매체인 신문이 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하는 일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일요판 문학부록도 21세기를 바라보는 세기말에서 일간지들이 한번 생각해봄 직한 것은 아닌가. 김선학<문학평론가·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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