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1만3000여 명 도시락 싸야 할 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6월 식중독 사고 여파로 급식을 중단했던 학교는 107개교. 재학생만 11만여 명이다. 이 중 14개 학교 안팎의 1만3000여 명(서울 10여 개 교 1만여 명)은 개학 이후에도 한동안 점심을 도시락으로 해결해야 할 전망이다.

급식을 재개한 학교도 걱정거리가 없는 게 아니다. 위탁급식을 하는 학교는 6월 개정된 학교급식법에 따라 3년 이내 직영 급식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급식을 중단했던 학교를 점검해 봤다.

◆ "늦더라도 신중하게 결정하자"=서울에서 급식이 중단됐던 47개 교 중에서 직영으로 급식체계를 바꾼 학교는 네 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중계중은 직영 전환에 따른 시설투자비 1억여원의 지원이 지연되는 바람에 손을 놓고 있는 상태였다. 나머지 43곳은 위탁급식을 고수했다. H여고 모 교장은 "온도계로 잰다고 식자재 관리가 되느냐"며 "하라고 해서 하긴 해야 하는데 위해 요소 등 전문성을 감당할 수 있을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 전체 식중독 환자의 5분의 1(666명)가량이 발생했던 숭의여중.고도 최근 다른 업체와 1년간 급식계약을 했다. 학교 관계자는 "급식인원이 1900명이나 된다"며 "전문가가 아닌 인력으로 바로 직영으로 전환하면 아이들이 더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 법이 최대한 보완될 때까지 (위탁으로) 버틸 수 있으면 버티겠다"고 했다.

홍대부속여고나 영일고는 다른 학교의 급식 현장을 방문한 뒤 급식업체를 선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연히 개학 이후가 될 수밖에 없다. 영일고 측은 "늦어지더라도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하자는 게 학교나 학부모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학교=서울시교육청은 1년 단위로 위탁급식 계약을 하도록 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직영 신청을 분산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불똥은 엉뚱한 데로 튀었다. 진명여고는 5월부터 식당을 짓느라 급식을 중단했다. 그런데 식당 설비를 대기로 한 CJ푸드시스템이 식중독 사고로 손을 떼면서 설비 부분을 맡을 곳이 없어졌다.

이 학교 관계자는 "3억~4억원을 투자해 직영 급식을 할 여력이 없다"며 "그렇다고 1년 급식하기 위해 큰돈을 들여 설비투자를 할 업체가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학교는 11월 초 급식 재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면목중의 경우는 더욱 난감하다. 39개 학급 중 2개 학급에서 21명의 식중독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고 급식을 중단했다. 역학조사 결과 단 한 명에게서만 균이 나왔다. 게다가 식중독 원인균으로 알려진 노로 바이러스가 아닌, 몸에 흔한 포도상구균이었다. 신칠성 교장은 "식중독 사고가 난 건지 안 난 건지 (보건당국의) 최종 결과보고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 "창피한 것보다 배고픈 게 낫다"=영일고 황호신 교사의 고민은 따로 있다. 급식 값 지원을 받는 41명 때문이다. 황 교사는 "아이들은 배고픈 것보다 (지원받는 사실이) 드러나는 걸 더 싫어한다"고 말했다. 급식이 재개될 때까지 별수 없이 상품권을 주고 있긴 하지만 도시락을 제대로 싸오는지 확인할 수도 없다.

고정애.이원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