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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빅스타 김성주 아나운서, 중계보다 더 재밌는 에피소드 다이어리

중앙일보

입력

‘차차 부자’와 함께 독일 월드컵 중계방송을 맡으며 특유의 입담을 과시한 김성주 아나운서. 전쟁보다 치열했던 방송 3사 경쟁에서 정겨운 멘트와 위트 있는 진행으로 ‘토크쇼식 스포츠 중계’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MBC 김성주 아나운서의 월드컵 뒷얘기.

귀하는 2006 독일월드컵 중계방송에서 스포츠를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진행했습니다. 차범근·차두리 부자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웃음과 감동을 주었던 중계는 마치 입담 좋은 연예인들의 토크쇼를 보는 것처럼 유쾌했습니다. 스포츠 중계도 다채롭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공로를 높이 치하하는 바입니다.”

축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MBC 김성주 아나운서에게 감사패라도 수여하고 싶다. 그야말로 금의환향이다. 그는 올해 독일월드컵이 낳은 최고의 월드컵 스타로 떠올랐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새로운 스타플레이어 하나 없이 막을 내린 독일 월드컵. 월드컵 후폭풍은 오히려 방송가에 불어닥쳤다. 전쟁 같았던 방송 3사의 시청률 경쟁에서 MBC가 단연 돋보였고, 김성주 아나운서는 시청률 일등 공신으로 시청자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 정서상 국가대표팀 축구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에요. 특히 월드컵 같은 경우에는 그야말로 축제죠. 경기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것만으로는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겠더라고요. 단순한 중계가 아니라 국민들을 흥겹게도 해주고, 위로도 해줄 수 있는 진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신 것 같아요. 회사에서 스포츠 전문 캐스터가 아닌 저에게 월드컵 중계를 맡겼던 이유도 그런 모습을 기대했던 거고요.”

김성주 아나운서의 월드컵 발탁은 분명 파격적이었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시청자들도 처음에는 낯설어했다. 기존의 익숙했던 중계방송과 달리 너무 가벼운 거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비전문가인 아나운서가 축구 중계방송을 하는 것은 시청률만을 고려한 지나친 상업주의라는 질타도 있었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보여준 김성주 아나운서의 친근하고 유쾌한 입담은 이러한 우려를 한순간에 잠재워버렸다.

“새로운 스타일의 스포츠 중계를 해보겠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다른 나라의 스포츠 중계를 보면 해설자와 함께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면서 편안하게 중계를 하잖아요. 마치 쇼 프로그램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스포츠 중계는 지나칠 정도로 엄숙하고 진지해요. 너무 분석적이고요. 시청자들과 함께 스포츠 자체를 즐겨야 하는데 너무 결과만을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에요. 결과만 중요하면 스포츠 뉴스를 보면 되지 왜 90분간 TV를 보고 있겠습니까?”

1년간 월드컵 준비차 중계일지 쓰며 내린 결론, 스포츠는 드라마다

김성주 아나운서는 중계방송을 하는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결과만 중요시할 것이 아니라 경기가 진행되는 과정이 흥미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스포츠 중계도 드라마처럼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드라마에는 기승전결이 잘 짜인 대본이 있듯이 스포츠 중계도 나름대로 콘티가 필요해요. 화면에 보여지는 한 컷 한 컷이 모두 의미가 있는 거예요. 카메라맨이나 프로듀서가 나름대로 이유를 가지고 화면을 구성하니까요. 배우가 대본에 따라 연기를 하는 것처럼 해설자와 캐스터는 상황과 화면에 맞는 중계를 하는 것이죠.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고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와 쉽고도 재미있는 중계를 해야 스포츠가 정말 각본 없는 드라마가 되는 겁니다.”

1년 전 김성주는 아나운서 국장으로부터 월드컵 중계를 맡을지 모르니 미리 준비해두라는 언질을 받았다. 사실 그에게 스포츠 중계는 전혀 낯선 장르가 아니었다. MBC 아나운서로 입사하기 전에 3년 동안 케이블 TV에서 스포츠 전문 캐스터로 일했던 것. 축구와 야구, 농구, 당구까지 종목을 가리지 않고 중계한 방송만도 1000여 회에 달할 정도로 그는 매일 한두 개의 스포츠 중계를 진행했다.

“아무리 예전에 스포츠 전문 캐스터였다고 해도 부담이 컸어요. 그렇게 많이 중계를 했어도 국가대표팀의 A매치 경기는 처음이었거든요. 게다가 이번 월드컵을 위해 4년간 준비했던 선배님들도 계시는데 ‘깜짝 캐스팅’이 됐으니 민망하고 죄스러운 마음도 들더라고요. 사실 스포츠 중계는 그분들의 몫이잖아요. 다행히 불협화음 없이 너그러이 이해해주고 격려해주셔서 잘 준비할 수 있었지만요. 우선 축구 경기를 많이 봤습니다. 영국의 프리미어리그,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그, 독일의 분데스리가를 꾸준히 보면서 유명 선수들의 이름과 플레이 스타일을 익혔어요. 그리고 중계일지를썼어요. 선수들의 특징과 캐스터의 스타일을 꼼꼼히 분석했죠. 몇 차례 테스트도 해보고요.”

이번 월드컵에서 그의 중계일지는 큰 도움이 되었다. 자료를 집약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포스트잇을 사용하는 묘안도 발휘했다. 포스트잇에 선수 이름과 간단한 선수 정보를 적어 한눈에 선수들을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A4지를 반으로 접어 그 위에 포지션별로 각 선수들의 포스트잇을 붙여 놓고 경기를 중계하면서 자료로 활용한 것. 왼쪽에는 선발 선수를, 오른쪽에는 후보 선수들의 포스트잇을 붙여놓아 선수 교체가 이뤄져도 신속하게 교체가 가능해 종이 두 장만 손에 쥐고 있으면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나를 당황케 한 두리의 거침없는 멘트, 차범근 감독과는 인간적인 고민도 나누는 사이

김성주 아나운서와 ‘차차 부자’의 3인 중계를 두고 사람들은 김성주만이 할 수 있는 ‘토크쇼식 중계방송’이었다고 평한다.

‘생방송 화제집중’에서 보여준 친근함과 라디오 DJ로서의 위트와 순발력, 여기에 ‘사과나무’를 통해 우러난 인간미가 버물러진 김성주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물론 차범근 감독과 차두리 선수와의 찰떡호흡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캐스터의 역할은 해설자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해설자와 친해지고 호흡이 잘 맞아야 하죠. 차범근 감독님과 중계방송을 한다기에 솔직히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원래 선수 출신 해설자는 경기를 보느라고 얘기를 잘 안하거든요. 처음에는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우선 감독님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어요.”

김성주 아나운서의 우려는 차두리의 투입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낯을 가리지 않고 매사에 밝은 성격인 차두리와는 금세 농담을 나누는 형, 동생으로 친해질 수 있었다. 아들이랑 가까워지니까 자연스럽게 아버지인 차 감독하고도 편안해질 수 있었다. 차 감독이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것을 알고 부정(父情)을 이용한 차두리 공략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

“차범근 감독과 두리는 정말 축구밖에 몰라요. 일부러 꾸미거나 과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들의 경험담을 들려주니까 시청자들이 좋아했던 것 같아요. 두리는 정말 거침없어요. 한번은 오버헤드킥을 하다 넘어진 선수를 보고 ‘저 선수 참 아프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두리가 웃으면서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해보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하더라고요. 퇴장 당하는 선수를 보고는 ‘퇴장 당할 때 정말 외로워요. 창피합니다. 상대편을 응원하는 관중들이 병을 집어 던지기도 해요. 저도 베트남에 갔다가 병에 맞아 죽을뻔했어요.’라고 돌발 발언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병을 던져도 괜찮냐고 물으니까 그때는 무조건 도망가야 한다고 말해서 웃음을 참느라 혼났습니다. 차범근 감독님과도 많이 가까워졌어요. 처음에는 축구 얘기밖에 안했는데 나중에는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얘기도 해주고 축구인으로서의 고민, 심지어 사모님과의 연애담까지 들려주시더라고요.”

김성주 아나운서는 월드컵 결승전 중계를 마치고 지난 7월 11일 귀국했다. 한 달 반 넘게 이어진 타국 생활에 그는 다소 야위었고, 얼굴도 검게 그을려 피곤한 빛이 역력했다. 무엇보다 이제 20개월 된 아들 민국이를 보지 못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아들 사랑이 끔찍했다.

“한창 말을 배우고 애교가 늘어 제일 예쁠 때예요. 아들이 보고 싶어 집사람한테 공항으로 나와 달라고 했는데 은근히 걱정이 되는 거예요. 혹시 아빠를 못 알아보면 어떡하나 하고요. 다행히 낯을 가리지 않고 너무나 반갑게 맞이해줘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애 엄마가 단단히 세뇌를 시킨 모양이에요. 매일 사진 보여주고 축구 중계도 같이 봤대요. 그래서 요즘도 축구 경기를 하면 TV를 보면서 ‘아빠 아빠’ 해요. 사실 차범근 감독님도 따님이 손자를 데리고 마중 나오길 내심 바라셨어요. 그런데 일이 있어서 못 나왔더니 많이 아쉬워하더라고요. 대신 우리 아들이 차 감독에게 뽀뽀도 해주고 애교를 부리니까 얼굴이 환해지시더군요. 감독님이 나중에 ‘차범근 축구교실’에 꼭 보내라고 하셔서 1년 뒤에는 아들한테 축구를 가르쳐보려고 해요.”

월드컵 이후 인기 치솟는 남편 은근히 걱정하는 귀여운 아내

“캐스터의 역할은 해설자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해설자와 친해지고 호흡이 잘 맞아야 하죠. 차범근 감독님과 중계방송을 한다기에 솔직히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우선 감독님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어요”

김성주 아나운서는 민국이를 위해 독일월드컵 대표팀의 유니폼과 마스코트 인형, 모자 등을 사왔다. 그리고 아내를 위해서는 솥단지를 준비했다. 독일은 쇠가 유명하다는 말에 압력솥 두 개와 프라이팬, 칼, 손톱깎이 등을 꼼꼼히 사서 안겼더니 굉장히 좋아하더란다. 김성주 아나운서와 아내 진수정씨는 무려 10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한 ‘의지의 캠퍼스 커플’이다. 진씨는 학창 시절 김성주 아나운서에게 먼저 사귀자고 말할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이다. 남자친구가 케이블 방송에서 한 달에 30만원을 받으며 힘든 시절을 보낼 때 빚까지 갚아주며 아나운서의 꿈을 잃지 말라며 등을 두드려주던 듬직한 친구이기도 했다. 진씨의 격려와 경제적인 도움으로 그는 4전5기 끝에 MBC 아나운서로 입사할 수 있었다.

“그때 저를 믿어주는 사람은 어머니하고 아내밖에 없었어요. 아나운서 아무나 되는 거 아니라며 괜한 바람 들지 말고 빨리 조그마한 회사라도 들어가라고 야단이었어요. 그때 제가 포기했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요? 돈도 제대로 못 받고 설움받으며 고생했던 시간을 지금에 와서야 보상받는 것 같아요. 그때 케이블 방송에서 매일 소리를 지르며 중계를 했더니 목에 굳은살이 박여서 이제는 좀처럼 목이 안 쉬어요.”

10년을 사귄 두 사람이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얘기도 재미있다. 김성주 아나운서가 케이블 방송에서 일할 때는 남자 직업이 변변치 않다고 여자 집에서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MBC에 입사하고 나서는 반대로 김성주 아나운서의 아버지가 완강하게 결혼을 반대하는 바람에 2년 동안 설득한 끝에 간신히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저에 대한 사랑이 좀 유별났어요. 제가 3대 독자거든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잉보호를 하셨죠. 집안일은 전혀 안 시키고 편애를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 생활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우리 아들은 4대 독자잖아요. 그래도 민국이는 저처럼 안 키우려고요. 어릴 적부터 캠프도 보내고 자유롭게 해줘야죠.
사람들은 제가 굉장히 가정적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가사에는 거의 도움이 안 되는 남편이에요. 반찬 투정도 심해서 국이 없으면 밥을 못 먹어요. 이번에 독일에 가서도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을 많이 했어요. 3일에 한 번 정도 한국 식당에 가서 실컷 밥을 먹고 이틀은 거의 굶었어요. 바게트나 소시지, 치즈 같은 독일 음식은 정말 못 먹겠더라고요. 그래서 몸무게가 4kg이나 줄었어요.”

그래도 아내 진수정씨는 남편의 까탈스러운 입맛을 군소리 없이 받아준다. 털털한 성격의 진씨도 아나운서인 남편이 혹시나 방송국에서 한눈이라도 팔까봐 은근히 경계도 하고 질투도 보인다. 월드컵 이후 남편의 인기가 높아지자 뜬금없이 한마디 하더란다.

“친구들이 그러대. 오빠가 요즘 아나운서 중에서 인기 최고라고. 오빠가 그렇게 대단해?”

괜한 질투심이라고 무시할 만도 하지만 그는 아내를 안심시키려고 대꾸를 한다.

“뭐가 대단해? 별거 아니야. 원래 다 이러다 마는 거야. 너무 의식하지 마.”

누가 뭐래도 요즘 김성주 아나운서의 인기는 상종가다. 독일에서 복귀하자마자 그는 MBC 간판 오락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새 코너인 ‘경제야 놀자’ 코너의 MC로 투입됐다. 그리고 MBC가 하반기 예능 프로그램 중 최고 야심작으로 기대를 걸고 있는 ‘황금어장’에서는 강호동, 신정환, 정선희 등 연예계 최고의 입담들과 함께 진행을 맡을 예정이다. 3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 ‘김성주의 굿모닝 FM’의 DJ로도 활약하고 있어 그는 입사 이후 최고의 황금기를 맞고 있다. 이제 그가 목표로 삼는 것은 새로운 스타일의 뉴스 앵커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뉴스도 많이 변할 거예요. 지금까지는 뉴스의 공정성과 신뢰성 때문에 보통 기자들이 앵커를 맡아왔습니다. 하지만 항상 경직되고 딱딱할 필요는 없잖아요. ‘생방송 화제집중’처럼 여유 있고 편안하게 뉴스를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뉴스 자체도 점차 연성화될 거예요. 그때는 신뢰감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여유로움을 줄 수 있는 아나운서에게도 기회가 올 거예요. 젊은 사람들이 점점 뉴스를 안 보잖아요. 그들을 TV 앞에 앉히려면 어떤 게 필요할지 고민하면서 차근차근 준비해 보려고 합니다.”
(여성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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