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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누가 학생들을 망치게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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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학생들이 써온 시들은 재미없었다. 컴퓨터로 작성된 글씨체는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으로 개성이 돋보였지만, 그 속에 담긴 정서는 엇비슷했다. 화려한 수사의 나열이거나 값싼 감상의 토로가 대부분으로 젊은이 특유의 치열한 고민이나 현실과의 대결의식이 엿보이지 않았다. 논리도 의미도 실종된 그야말로 즉흥적인 느낌과 생각의 편린일 뿐, 수업 첫날 날 설레게 했던 젊음의 발랄한 생기가 만져지지 않았다.

나는 실망했다. 언젠가 내가 섬진강의 초등학교 교실에서 본 아이들의 시들도 이보단 훌륭하리라. 지금 내가 '시창작론'을 가르치는 대학 국문과 학생들의 어설프게 세련된 작품보다 코흘리개들이 아무렇게나 끄적인 일기가 더 힘있고 자연스러운 비유가 살아있었으며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 학생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수업을 듣는 그네들의 순수한 모습과 그들의 글에 담긴 진부한 감성의 모순을, 요즘 젊은이들을 이해하려면 텔레비전 광고를 보면 된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장면과 말도 안 되는 문구들이 눈과 귀를 어지럽힌다. 문장도 아닌 엉터리 언어 조합들. 화면은 또 얼마나 자주 바뀌는지.

광고는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재는 척도다. 시대를 대변하는 감성에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지하철과 텔레비전에는 이유없는 끼만 가득하다. 그보다 더 유치한 광고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으리. '대한민국은 변하고 있습니다'와 '난 자신 있어요'가 요즘 유행어다. 뭐가 그렇게 자신 있는데? 뭐가 달라졌는데?

나는 학생들의 시보다 그들을 겨냥해 만든 얄팍한 광고에 더 분개했다. 그들을 찰나적인 자극의 노예로 만든 광고와 TV 프로그램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월드컵 4강 이후 대한민국을 지배한 터무니없는 자신감과 센티멘털리즘이 우리 젊은이들을 망쳤다. 없는 욕망도 만들어내는 탐욕스러운 자본과 젊은 피에 기댄 무책임한 정치판이 머리는 없고 가슴만 있는 감성기계를 양산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없으면 하루도 생존할 수 없는 아이들.

지성이 밑받침되지 않는 싸구려 감상은 건전한 비판의식을 잠재우는 마취제다. 이 천박한 몸짓과 시끄러움, 알맹이는 없고 넘치는 거품에 더럽혀진 눈과 귀를 어떻게 씻어내야 할지. 하나의 색깔만이 강요되던 시대에서 다양한 색의 시대로 옮겨가는 과도기의 현상이라고, 오랜 식민과 군부독재의 터널을 통과해 비로소 자유의 빛을 쬐고 이제 막 먹고 살 만한 한국민들의 여유와 자기확인이라 보기엔 마취의 정도가 심하다. 아무 이유없는 도취는 아무 이유없는 살인으로 이어져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이를 때려죽인다.

콤플렉스에 기초한 자신과잉은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의 언행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신의 치수에 맞지 않는 지나치게 큰 옷을 입고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이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지 벌써 일년이 다 돼 가는데 그는 아직도 예복을 걸치는 방법을 몰라 쩔쩔매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대안이 없다. 그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가 아닌 다른 후보들은 더 찌그러지고 부족해 보여 그를 선택했던 한 사람으로서, 재신임 정국을 보는 심정이 참담하다. 지금 이 나라는 정치가들에게만 맡겨두기엔 위험할 만큼 표류하고 있다.

왜 나를 욕하느냐며 기회만 있으면 칼날을 세우는 대통령도 보기 싫고, 전두환.노태우에 비하면 별것도 아닌 측근 비리를 갖고 사사건건 트집 잡는 야당과 일부 언론의 억지도 보기 싫다. 그러나 이렇게 싸잡아 비난하기엔 우리를 에워싼 현실이 무겁고 냉엄하다. 지역구도에서 계급구도로 권력이 재편되는 과도기에 일어난 일시적 혼란이라고 말하기엔 정치판이 너무 어지럽다. 그래서 나처럼 현실과 담을 쌓고 사는 한갓 게으른 전직 시인이라도 이렇게 나서서 떠들 수밖에. 당신들. 그만 싸워. 같이 망하지 않으려면!

최영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