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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노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42)-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제2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9월8일에 미군이 인천에 상륙한다는 것을 알게된 건준 위원장 여운형은 부위원장 허헌과 그의 측근 정백 (장안파 공산당대표의 1인이며 건준조직시의 조직부장) 과 9월4일 허헌이 입원하고 있던 경성의전부속병원 병실로 박헌영을 초청해 미군을 영접하는데는 조선인민 자신이 수립한 국가정부의 손으로 하는 것이 좋다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리하여 이 4명이 국명을 「조선인민공화국」 이라 정하고 구성인들도 선정했다.
정강과 시정방침은 이강국·최용달·최무한·김용광(변호사) 등이 주로 기초했다.
9월6일 저녁 재동 경기여고강당에서 전국인민대표자대회가 각시·도 대표 8백명에 의해 개최되었다 (인민대표자수가 1천명, 또는 1천3백명 설이 있으나 이것은 주최측의 초청자수이고 실제 참가자는 약8백명이라 했다).우선 인민대표위원 55명, 후보위원 22명, 고문12명을 선정하고 이 가운데서 행정부 책임자를 선정했다.
국가행정부는 주석 이승만·부주석 여운형·국무총리 허헌, 내무부장 김구·외교부장 김규식·군사부장 김원봉·체신부장 신익희(이상 임정계), 경제부장 하필원·법제국장 최익한·기획부장 정백(이상 장안파), 교통부장 홍남표·보안부장 최용달·선전부장 이관술·노동부장 이주상·서기강 이강국(이상 박헌영파), 재정부장 서만식(북조선보수계), 보건부장 이만규(여운형파), 문교부장 김성수·사법부장 김병로(김성수파), 농림부장 강기덕(무소속) 등이다.
이들의 사상적 성향을 오늘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체로 좌익 12명, 우익 8명으로 볼 수 있으나 그당시 관점에서는 여운형· 허헌· 이만규· 강기덕을 중간파로 본다면 좌익 8명, 우익 8명, 중간 4명으로 된다. 당시 국내정치세력의 실세로 볼때 무난한 선정이었다. 일본총독부가 여운형을 불러 후사를 부탁한 것은 그때 여운형이 좌익이 아니고 중간계여서일 것이다.
김성수-송진우등 우익이 한사코 반대, 비난하고 나선 것은 좌우익의 인사배정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운형-박헌영계가 사전에 공표도 하지 않고 갑자기 인민대표자대회를 개최, 일방적으로 정권을 수립한 점 때문이다.
말하자면 또 정국의 헤게모니를 빼앗긴데 분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소위 인민대표라는 것은 누가 선출했으며 무슨 자격이 있느냐? 하룻밤사이에 나라를 만들어내는 법이 어디있느냐』고 비난,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자 인민공화국 측에서는 『그렇다면 그들이 그렇게 신성시하고 봉대한다고 떠드는 상해림정을 만든 사람들은 무슨 자격이 있어 만들었나, 그리고 상해에서 임정을 수립한다고 몇달이나 광고하고 만들었나? 혁명이나 비상시에는 혁명적 방법이나 비상방법으로 정부를 만들 수 있지 않느냐』고 반박하고 나섰다.
나는 이 인공 각료명단에 박헌영의 이름이 없는 것을 보고 좌우합작정부의 성공을 위해 그가 한발 물러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 이튿날 나는 전동여관으로 김창숙을 찾아갔다.
방에 들어가 미처 앉기도 전에 심산은 『자네들 공산당은 무슨 이런 짓을 하는가? 하룻밤 사이에 나라를 만들다니…』하며 나를 보고 화를 냈다. 『제가 어디 만들었습니까? 저도 그 사람들이 경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공산당하고는 아직 관계없습니다』고 엉겁결에 변명 아닌 변명을 한 후 솔직히 내 의견을 밝혔다.
『사사건건 우익은 좌익을 반대하고 좌익은 또 좌익대로 우익을 반대하면 어찌됩니까? 어르신과 백범이 몽양을 인간적으로 불신하고있는 것도 압니다. 그리고 인촌이 자기신문사에서 박헌영이 신문발송을 하고있던 자라고 업신여겨 한자리에 같이 앉는 것조차 싫어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과거를 잊고 현실을 바탕으로 같이 일을 해보고 상대방이 옳지 못한 짓을 하면 그때 가서 반대하든지 갈라서든지 하셔야지요. 지금 이자리에서 같이 일도 해보지 않고 욕만하고 계시면 어떻게 하십니까?』고 반문했다. 그러자 심산은 기가찬듯 아무말 없이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안되네. 백범이나 우남 (이승만의 호)이 받아들일 사람들도 아니고 이 나라를 몽양이나 우남에게 맡겨서도 안되네』하고 말했다.
나는 이정윤 아지트에 돌아가서 이정윤과 이우적을 보고 심산을 만난 이야기를 하며 『인민공화국 만들어봤자 좌우합작은 될 것 같지가 않다』고 하자 이우적은 『미군이 상륙해오는데 국내에 영접할 정권기관 하나 없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현재의 정세는 크게 보면 여운형·김성수·박헌영·이승만·김구등 다섯파가 있는데 이 다섯파가 다같이 뭉칠 수는 절대 없다』면서 『그것보다 공산주의자들도 내일(9월8일)통일공산당을 만든다고 열성자회의를 여는데 일장의 파란이 있을는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나는 그들이 박헌영을 어떻게 보고있는가 알고싶어 물어봤다. 그들은 현 단계에 있어서는 공산당을 통일 재건해 지도해 나갈 사람으로는 박헌영 만한 권위를 가진 사람은 없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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