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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개 시장·군수·구청장실 장관실(50평) 보다 넓게 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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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민선 4기 지방자치단체장이 집무를 시작한 7월 초. 상당수 지자체가 수천만원씩을 들여 단체장실을 호화롭게 꾸미거나 평수를 넓히는 리모델링 공사를 벌였다. 주민들이 "왜 멀쩡한 집무실을 뜯어고치느냐"고 항의했지만 지자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1995년 민선 지자체장이 등장한 이후 '호화 취임식' '보은(報恩) 인사' '골프.술자리 접대'와 함께 비판받아온 '호화 집무실'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취재팀은 246개 전 광역.기초 자치단체와 행정자치부.감사원에 정보공개를 청구, 지자체 보유 청사 현황을 입수.분석했다.

230개 시장.군수.구청장실은 평균 41.5평. 초.중.고생 30~40명이 쓰는 교실(약 20평)의 두 배다. 중앙부처 장관실(50평)보다 넓은 방을 쓰는 시.군.구만 수원.포항.천안시 등 50곳(21.7%)에 이른다.

도지사 및 광역시장 16명은 평균 67.4평을 사용하고 있다. 중앙부처 장관실보다 좁게 쓰는 곳은 경남.충남.경북.강원도 네 곳뿐이다.

부시장실(25.5평), 부군수.부구청장실(21.1평)은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의 국회의원 사무실(25평)과 비슷한 규모다. 특히 95년 이후 착공한 신청사의 시장.군수.구청장실은 평균 51.3평에 달했다. 민선 자치 이후 더 커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회의실 등 각종 공간을 두고도 굳이 회의나 행사를 '자기 방'에서 하려는 단체장과 공무원의 의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기자 간담회니 상패 수여니 모든 걸 집무실에서 다 하려 들잖아요. 그러고는 집무실이 좁다고 해요. 사실은 권위주의 탓입니다. 방문하는 사람을 방의 크기로 압도하며 권력의 무게를 과시하려는 거죠."(김원.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운동장' 집무실은 '고래등' 청사의 일부일 뿐이다. 95년 이후 새 청사를 지은 지자체는 모두 48곳(광역시.도 5곳 포함)으로 건축비만 2조3000억원에 이른다. 이들 신청사의 공무원 1인당 면적은 9.9평이다. 기존 청사(6평)보다 65% 이상 넓어졌다.

'주민 숙원사업'이라며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짓는 읍.면.동 청사나 문화.체육시설도 마찬가지다. 전국 지자체가 보유한 각종 청사와 문화.체육시설 등의 연면적은 996만여 평(2004년 말 기준). 3년 만에 176만여 평이 늘었다. 김혜정 명지대 교수(건축학)는 "단체장들의 공약 남발로 지역 특성과 입지 조건을 무시한 청사와 시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선다"고 말했다. 호화 청사들은 완공된 뒤에는 주민 세금을 잡아먹는 '괴물'이 된다. 연면적 2만4000평 규모의 용인시 행정타운은 한 달 관리비가 2억2000만원이다. 시의회 속기록에 따르면 한 해 유리창 청소에만 4000여만원이 든다.

강원 강릉시 등 전국 85개 지자체는 올해 청사가 크다는 이유로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교부금을 평균 15억원씩, 총 1300억 여원을 받지 못했다. 상당수 지자체는 큰 청사를 짓느라 빚더미에 올랐다. 중앙정부의 교부금을 못 받아 손해, 빚 원금과 이자를 갚느라 손해다. 지자체는 행자부나 감사원 등 중앙정부의 말을 듣지 않는다. 청사 건립을 위해 행자부의 심사를 받은 24개 지자체 중 14곳이 심사 뒤 사업 면적을 10% 이상 늘렸다. 지난해 대대적인 감사를 벌였다가 해당 지자체의 반발에 시달린 감사원은 기준을 어긴 지자체의 실명 공개를 거부했다.

원칙적으로 단체장에 대한 견제는 지방의회나 지역언론.지역단체의 몫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당이나 학연.지연으로 얽혀 단체장의 독주를 막지 못했다. 박종면 전 경기도 광주시의원은 2003년 신청사 부지를 정하는 투표에서 분위기에 눌려 반대표를 던지지 못했다. "의원들이 쭉 둘러앉은 가운데 시장이 직접 나와 지켜보고 있더군요. 실명으로 찬반을 표기하라는데…." 그는 "내 세금이 낭비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지 주민들이 좀 더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인성 기자, 임슬기 대학생 인턴기자

◆ 단체장실=행자부 조례 표준안과 지난해 감사원 감사 기준에 따라 ▶단체장 집무실 ▶비서실(부속실) ▶접견실.휴게실.탕비실 등의 면적을 포함했다. 중앙부처 장관실 등의 면적도 같은 기준으로 계산했다.

*** 바로잡습니다
8월 14일자 1면 '50개 시장.군수.구청장실 장관실(50평)보다 넓게 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표에 나온 전남 강진군수실 면적을 53.8평에서 46평으로 바로잡습니다. 강진군은 7월 초 황주홍 신임 군수 취임에 맞춰 군수실.부군수실 일부를 줄이고 여직원 휴게실(11평)과 문서보관실(5.8평)을 신설했다고 밝혔습니다. 취재팀의 조사 시점이 리모델링 이전인 6월이어서 생긴 잘못입니다. 또 15일자 5면 청사 관련 기사 중 표에서 충북 증평군 의회의 의원.공무원 1인당 청사 면적을 49.9평에서 16.6평으로 바로잡습니다. 증평군은 의회 건물 898평 중 599평이 문예회관으로 이용된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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