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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용기의표준이야기

UFO와 US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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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얼마 전 백두산 상공에 미확인비행물체(UFO)가 출현했다는 보도를 읽은 적이 있다. 대부분의 UFO에 대한 뉴스는 확인되지 않은 채 화젯거리가 되다 기억에서 사라진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이렇게 미확인물체들이 출현하곤 한다.

올해는 고온초전도체가 발견된 지 20년 되는 해다. 1986년 스위스 IBM연구소의 베드놀츠와 뮐러 박사가 란타늄-바륨-구리 산화물이 영하 243도에서 초전도체가 되는 것을 발견, 보고하면서 고온초전도 시대가 열렸다. 초전도체란 일정한 온도 이하가 되면 전기저항이 완전히 사라지는 물질을 뜻한다. 이는 저항 손실이 없는 전선, 서울~부산 간을 한 시간 내에 주파할 수 있는 시속 500㎞ 이상의 자기부상열차, 고해상도 MRI나 핵융합로에 필수적인 강력한 초전도 자석, 그리고 인간이 만든 자기장 센서 중 가장 감도가 높은 초전도양자간섭장치(스퀴드) 등의 제작이 가능한 꿈의 소재다.

베드놀츠 박사 등의 발견에 이어 다음해엔 미국 휴스턴대학팀이 이트륨계 구리 산화물이 영하 183도에서도 초전도체가 된다는 경이적인 발표를 했다. 1911년 네덜란드의 카메링 오네스가 수은이 영하 268.8도에서 초전도체가 되는 것을 최초로 발견한 이후 이러한 발견이 있기 전까지 75년간 초전도체가 되는 임계온도는 겨우 19도 상승해 영하 250도에 머물러 있었다. 새로운 초전도체의 발견은 응용 측면에서 대단한 가치를 지녔다. 이전의 초전도체는 값이 비싸고 희귀한 액체 헬륨으로 냉각시켜야 했지만 새로운 초전도체는 값싸고 흔한 액체 질소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더 높은 임계온도의 새로운 초전도체를 합성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경쟁적으로 연구하다 보니 새로 합성한 물질의 특성을 정밀하게 측정하지 못한 채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사례도 늘기 시작했다. 거의 상온에 가까운 온도에서 초전도체가 되는 물질을 발견했다는 뉴스가 보도됐지만 대부분은 재현되지 않았거나 측정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곤 했다. 그래서 초전도 학계에선 이런 초전도물질을 UFO에 빗대 미확인초전도물질(USO)이라 부르게 됐다.

새로운 고온초전도물질의 발견으로 베드놀츠와 뮐러 박사는 8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영광 뒤에는 아쉬움의 한숨을 쉬었을 과학자들이 있었다. 바로 프랑스의 에르-라코와 라보 교수가 그들이다. 베드놀츠와 뮐러 박사가 초전도성을 발견한 물질은 바로 라보 교수팀에 의해 먼저 합성됐고, 그들도 이 물질의 전기적인 특성을 연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물질이 초전도체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기 전도도를 영상 300도에서 영하 100도까지만 측정했다. 만일 그들이 온도를 조금만 더 낮춰 측정해 봤다면 노벨상의 주인은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후로도 많은 USO가 출현했다가 사라지곤 했지만 때로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초전도체를 발견하기도 했다. 2001년에 초전도성이 발견된 마그네슘-붕소 화합물의 경우 많은 실험실의 선반 위에 10여 년 동안이나 놓아 뒀던 물질이다. 이 물질의 초전도성이 밝혀지자 많은 연구자가 선반 위에 놓인 그 물질을 보면서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동안 고온초전도체의 임계온도 상승 경주는 93년의 수은계 산화물 초전도체 발견 이후 영하 135도에서 멈춘 듯했다. 하지만 5월 말 미국에서 임계온도가 영하 123도인 새로운 초전도체에 대한 특허가 출원됨으로써 임계온도 신기록 경신의 가능성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의 발견도 또 하나의 USO가 아닌지 좀 더 지켜봐야 하겠다.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생체신호계측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