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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컴퓨터 탄생 25주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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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981년 8월 미국의 정보통신 기업인 IBM은 개인용 컴퓨터(PC) 5150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는 최초의 PC는 아니었지만 PC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PC는 경제활동뿐 아니라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도 바꿔놓았다.

IBM은 PC를 판매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전략도 선보였다. 컴퓨터를 대여해 주던 과거의 판매 전략에서 벗어나 개인에게 직접 PC를 판 것이다. 또 다른 회사의 부품을 이용해 표준화 모델을 대량 생산하는 전략도 도입했다. 당시 신생기업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MS)를 포함한 다른 회사들에 이 PC에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도 허용했다.

그러나 IBM은 자신의 무덤을 팠다. IBM의 PC 판매는 수많은 컴퓨터 회사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IBM은 수많은 컴퓨터 기업과 경쟁해야만 했다. 결국 IBM은 완전히 구조조정을 한 뒤에야 다른 회사들과 경쟁할 수 있게 됐다. 이는 PC의 사회 변혁적 기능을 보여주는 사례다.

PC 등장 이전에는 컴퓨터가 조지 오웰의 예언대로 '빅 브러더'로서 지식과 권력의 중앙집중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PC는 초기에 탈(脫)중앙집중화의 유용한 수단처럼 보였다. 거대 정부에 억눌린 개인들의 힘을 되찾아 줄 것 같았던 것이다. 그 배경에는 개인이 컴퓨터를 구매한 뒤 자신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면 바로 생산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란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런 생각은 곧 실현되는 듯 보였다. IBM PC가 출현한 지 수년 내에 사람들은 과거의 수퍼 컴퓨터에 맞먹는 조그만 PC를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동시에 PC는 개인주의 개념의 한계를 증명하는 사례로 간주되기도 했다. 당초 기대했던 것만큼 개인들에게 힘을 부여하거나 사회 변혁을 불러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들이 정보기술(IT) 부문에 엄청난 투자를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효율성이 올라가지는 않았다. '컴맹'인 직원들을 훈련하는 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써야 했다. 90년대에 인터넷이 등장하고 나서야 PC는 본격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IT가 '효율성 상승'을 불러왔음을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 경매, 인터넷 백과사전, 인터넷 채팅룸처럼 새로운 형태의 활동은 개인 간 상호작용의 지평을 넓히는 것들이었다. 개인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시스템이 가치를 창조했고, 역동적인 사회 변혁 과정에 시동을 건 것이다.

인터넷의 힘은 매혹적이었지만 동시에 두려운 것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클릭' 하나로 전 세계를 휩쓸며 정보와 컴퓨터 프로그램을 파괴하는 바이러스에 두려움을 느끼게 됐다. 이런 정신적 충격은 과거와는 매우 다른 대응을 불러왔다. 정부의 규제나 개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한 기업의 개발작업도 마찬가지였다. 중앙집중적 권력이나 개인 차원의 노력보다 오히려 고대 시민공화주의를 연상케 하는 여러 주체의 협력으로 해결책이 나올 수 있었다.

PC 탄생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 이런 상호작용은 당연한 것이 됐다. 그러나 이 때문에 PC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물건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있다. 휴대전화가 상호작용 측면에서 PC보다 훨씬 뛰어난 데다 더욱 세분화된 맞춤 기능을 갖췄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PC가 구닥다리 물건일 뿐이라는 이런 주장은 오히려 PC가 얼마만큼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매년 2억대의 새 PC가 팔린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PC는 이제 생필품이 됐다. PC가 촉발한 사회.정치적 혁명은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해럴드 제임스 프린스턴대 교수

정리=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