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56. 모교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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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병원 연수원을 방문한 대야초등학교 어린이들에 둘러싸여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필자.

내가 나온 전북 군산의 대야초등학교는 전국 초등학교 탁구대회를 주름잡는 학교다. 1990년대 중반 대야초교 탁구부가 여자부 전국 4관왕을 차지했을 당시 이보경 감독이 나를 찾아왔다. 어려운 환경에서 빛나는 성적을 내고 있는 '후배'들을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남녀부 모두를 3년 안에 전국 최강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가 요구한 대로 모든 후원을 했다. 사시사철 훈련을 할 수 있게 실내 체육관을 지어 주고, 선수단 전용 버스도 마련해 주었다. 모교 탁구부는 97년 '대통령기 전국 탁구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해 무려 5관왕을 차지했다.

선수단은 우승을 하면 가장 먼저 나를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한다.

국내 정상에 오른 탁구선수들은 지금도 수도권 지역에서 시합이 있거나 전지훈련이 필요할 때는 수시로 우리 길병원 연수원에 묵는다.

나는 탁구부 후원뿐만 아니라 해마다 모교의 6학년 학생들을 모두 인천으로 초청해 '선배'가 일군 병원과 대학을 보여주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꿈을 키워준다. 아이들은 인천과 강화의 유적지를 탐방하고, 서울 구경도 한다. 그래서 저학년 아이들은 나의 초청을 받게 되는 6학년이 되기 만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한다.

지난해부터는 군산에서 20㎞도 더 떨어진 작은 섬 '개야도'의 초교 어린이들도 초청하고 있다. 전체 주민이 1000여 명에 불과해 전교생.교직원을 합쳐야 40명 정도다. 나의 초청으로, 처음 육지 구경을 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인천을 다녀간 아이들이 "고향 선배님의 이념인 박애.봉사.애국을 실천하는 어린이가 되겠다"는 감사의 편지는 매년 쌓이고 있다.

77년엔 문봉식 대야초교 교장선생님이 나를 찾아와 "학교의 상징인 교문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다 쓰러져가는 문으로 드나들 게 할 수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79년 2월 멋진 돌기둥에 새 교문을 달아줬다. 94년에는 이 교문이 좁아 큰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 다시 넓은 문으로 바꿔주었다. 90년대 초엔 초등학교에선 처음으로 '고생물 화석전시관'도 설치했다.

이리여고의 기숙사와 강당도, 전희종 교장선생님이 부탁해와 건립을 지원해 줬다. 이리여고는 기숙사와 강당에 내 호를 붙여 '가천학사' '가천관'이라 부르고 있다.

이달 말에는 전북의 여중 3학년생들이 이리여고에 모여 '제1회 가천 이길여 수학(數學)장학생 선발대회'를 한다. 수학영재를 발굴하고 장려하기 위한 이 대회도 내가 후원한다.

대야초교와 이리여고 졸업식 때는 우수학생들에게 우리 가천학원 내의 신명여고와 같이 '박애상' '봉사상' '애국상'을 준다. 이리여고에서 서울대 의대를 입학한 학생에겐 장학금도 준다. 전북도내 '참교육'을 실천하는 선생님들을 격려하기 위해 97년부터 전북교육대상을 시상하고 있고, 군산 벚꽃 아가씨 선발대회도 돕고 있다.

이런저런 일을 계기로 나는 전북애향 대상과 자랑스런 전북인 대상을 받았고, 전북일보가 뽑은 '20세기 전북인물 50인'에 선정됐다. 고향 분들이 주시는 상이어서 더욱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끼고 있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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