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부하는 야구부' 세현고, 아쉬운 패배도 역사다

중앙일보

입력

세현고 야구부는 2019년 창단했다. 출발부터 다른 고교 야구부와 지향점이 달랐다. 이 팀의 모토는 '고교야구 전국대회 우승'이 아니라 '공부하는 야구부'다.

13일 열린 제55회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1회전에서 맞붙은 세현고-청담고의 경기 장면. 임현동 기자

13일 열린 제55회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1회전에서 맞붙은 세현고-청담고의 경기 장면. 임현동 기자

세현고 야구부는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한다. 야구부원도 매일 일반 학생들과 함께 정규 수업을 받는다. 야구부 훈련은 7교시가 모두 끝난 평일 오후 4시에 시작되고, 야간 훈련은 선수 자율에 맡긴다. 야구부원이 수업을 빼먹는 날은 외부에서 열리는 야구대회에 참가할 때뿐이다. 엘리트 체육을 지향하는 한국 고교 운동부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다.

프로에서 성공하고 싶은 선수는 같은 이유로 세현고 입학을 꺼린다. 세현고 야구부는 주로 야구를 계속 해왔지만 그리 뛰어나지 못해 고민인 선수, 부상으로 중학교 때 많이 뛰지 못한 선수, 프로가 될 생각은 없는데 야구를 좋아해서 꼭 해보고 싶은 선수 등으로 구성됐다. 야구에 인생을 거는 대신, 야구를 통해 삶의 여러 의미 중 하나를 체험하는 '학생' 선수들이다.

세현고 야구부는 13일 충남 천안 북일고등학교야구장에서 열린 제55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중앙일보·일간스포츠·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주최) 1회전에서 청담고와 맞붙었다. 창단 3년 만에 밟게 된 대통령배 무대 첫 경기였다.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2-17로 대패해 5회 콜드게임으로 끝났다.

그래도 세현고 더그아웃은 끊임없이 들썩거렸다. 각각 9실점(3자책점)과 8실점(5자책점)을 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투수 두 명을 열심히 다독였다. 0-9로 뒤지던 3회 첫 점수를 뽑았을 때, 콜드게임 선언 직전인 5회 1사 후 송경일이 좌월 솔로포를 터트렸을 때, 모두가 결승타를 친 동료라도 맞이하듯 환호했다.

이기면 더 좋겠지만, 이기고 싶어서 야구를 하는 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세현고 야구부엔 단체 기합도, 얼차려도, 학교 폭력도 없다고 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세현고 야구부가 고교야구에 명징한 역사를 새기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