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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결국 민간병상 동원령···정부, 한달전 '2000명' 알고도 손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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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사상 첫 2000명대를 돌파하면서 코로나 유행이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초유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당장 쓸 수 있는 중환자 병상이 0개인 지역도 나왔다. 병상 확보에 비상이 걸리자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민간병원에 최대 1.5% 수준의 병상 동원령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방역당국은 이미 한달 전 "8월 중순 2000명대 확진자가 나올 것"이란 예측을 해놓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위중증 환자 400명 육박…“더 늘 것” 

1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0시 기준 신규 환자가 2223명(지역사회 감염 2145명) 발생했다고 밝혔다. 2000명대 발생은 국내 첫 코로나 환자가 확인된 지난해 1월 20일 이후 569일 만에 처음이다. 중대본은 “초기 감염력이 크고, 전파력이 강한 델타 변이 탓에 차단에 애로를 겪고 있다”며 “피로감이 커지면서 이동량 저감 효과가 예전처럼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도 어려운 요인”이라고 밝혔다.
박향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3차 유행때 주간 평균 250명이 사망했다면, 현재는 2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라며 "요양병원과 고위험군에 대한 예방접종 효과"라 말했다. 사망자는 줄었지만 위중증 환자는 연일 가파르게 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코로나19 사태 후 최다인 2,223명을 기록해 방역 당국에 비상이 걸린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 인근 대학에서 공부할 외국인 교환학생들과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코로나19 사태 후 최다인 2,223명을 기록해 방역 당국에 비상이 걸린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 인근 대학에서 공부할 외국인 교환학생들과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첫 1000명대 환자가 나온 지난달 7일에만 해도 155명이었는데 이날 387명까지 올랐다. 역대 최고치(1월 6일 411명)를 넘을 기세다. 위중증 환자는 고유량(high flow) 산소요법이나 인공호흡기, 에크모(ECMOㆍ체외막산소공급), 투석치료기인 CRRT 등이 필요한 환자를 말하는데, 이 중에서도 최중증 상태의 에크모 단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11일 기준 46명으로, 한 달 전(7월 11일 19명)의 2.5배 수준으로 늘었다. 3차 유행이 최정점에 달했던 지난해 12월 25일(11명)과 비교하면 4배 이상이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는 정부 집계보다 많은 53명(10일 기준)이 에크모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 전국 에크모 환자(109명)의 절반을 코로나 중환자가 차지한다.

한림대성심병원에서는 에크모 장비 11대 중 8대를 코로나 환자에 쓰고 있다. 8명 모두 최근 2~3주 사이 들어온 환자다. 이 병원 김형수 흉부외과 교수는 “코로나19 전담병원인 인천 의료원, 파주 의료원 등에서 에크모를 해야 한다며 급박한 전화가 걸려 온다. 환자가 빠지면 바로 찬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3차 병원인 데다 에크모 센터가 있어 전문 간호사 등 인력과 시설 역량이 되니까 요청이 오는 대로 받아왔지만 더 받긴 어렵다”고 말했다.

확진 판정 후 통상 1~2주 뒤 위중증으로 악화하기 때문에 환자 절대 규모가 줄지 않는 한 한동안 위중증 환자는 더 늘 것이란 게 의료계 우려다.

인력ㆍ장비 탓 에크모 치료 한계

정부는 늘 “병상이 여유가 있다”고 말한다. 전국 중증환자 전담 병상은 10일 오후 5시 기준 총 810개가 있고, 이 중 301개(37.2%)가 비어 있다. 하지만 지역별로 뜯어보면 심각하다. 대전·세종은 당장 입원 가능한 빈자리가 0이다. 경북(2), 전남(5), 경남(7), 제주(8), 강원(9), 충남(9), 전북(9) 등은 한 자릿수만 남아있다. 이런 지역에서 중환자가 나오면 다른 지역으로 급히 이송하는 수밖에 없다. 또 이런 중환자 병상 중에는 병원급(2차) 의료기관이 다수 포함돼 있다. 에크모 치료는 할 수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김형수 교수는 “간호사의 경우 중환자를 돌본 경력이 5년 이상 돼야 한다. 장비가 아니라 숙련된 인력의 문제인 건데 일반 병원에서 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인천 의료원은 지난해만 해도 에크모 두 대가 있었지만, 도저히 인력이 안 돼 현재 운영하지 않는다. 조승연 인천 의료원장은 “70명의 코로나 환자가 입원해 있는데 에크모가 필요한 환자를 이틀에 한 명꼴로 대학병원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최중증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는 결국 대형병원으로 몰리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사망할 확률이 90% 수준일 때 에크모를 다는 거라 이런 환자를 제때 옮기지 못하면 사망자가 늘 수 있다. 일반 중환자도 영향을 받는다. 홍성진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전 중환자의학회장)는 “상급종합병원으로 코로나 중환자가 집중되면 코로나가 아닌 다른 중환자가 수술ㆍ치료를 못 받게 된다”라고 말한다.

11일 부산 부산진구 놀이마루에 마련된 임시선별검사소를 찾은 시민들이 진단검사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11일 부산 부산진구 놀이마루에 마련된 임시선별검사소를 찾은 시민들이 진단검사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젊은층 위중증 환자 늘며 부담 더 커져

특히 최근 30~50대 젊은 중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점이 과부하로 이어진다. 기저질환이 없는 40대 A씨는 지난달 초 코로나에 확진돼 생활치료센터에 입원했다가 사흘 만에 호흡곤란이 심해져 전원 됐는데 산소치료에도 상태가 악화해 3주 넘게 에크모 치료 중이다.

코로나19 위중증 환자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코로나19 위중증 환자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3차 유행 때는 주로 70~80대 기저질환자가 위중증 환자로 악화해 상당수는 중환자 치료를 이어가다가 가망 없는 상태까지 악화하면 DNR(연명의료중단ㆍdo not resuscitate) 동의서를 쓰고 더이상 치료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젊고, 기저질환이 없는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위독해지는 사례가 확 늘었다. 심미영 서울대병원 소아간호과장ㆍ병원중환자간호사회 회장은 “이전엔 어느 정도 치료를 받다가 DNR을 선택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환자가 거의 없다. 젊으니까 끝까지 치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위중증 환자들이 에크모 치료를 받으면 소생할 가능성은 크다. 다만 치료 기간이 길어지고 한 사람에 들어가는 의료 자원이 이전보다 훨씬 많아진다. 1월의 중환자 100명과 지금 100명은 의료체계 부담 측면에서 보면 비교 안 될 만큼 큰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홍성진 교수는 “지금은 젊고 기저질환이 없던 환자들이라, 하는 데까지 해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이런 추세로 중환자가 계속 늘면 일반 의료체계가 마비될 수 있다. 풍전등화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병상이 비어있을 틈 없이 들어차 의료진은 탈진 직전이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역대 최대치인 2223명을 기록한 1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대학교 기숙사에 마련된 경기도 제14호 생활치료센터에서 확진자 이송 등을 위한 구급차와 버스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시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역대 최대치인 2223명을 기록한 1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대학교 기숙사에 마련된 경기도 제14호 생활치료센터에서 확진자 이송 등을 위한 구급차와 버스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시스

정부, 또다시 “병상 확보” 병원 압박 

상황이 급박해지자, 정부는 지난 10일 병원장들을 긴급 소집해 병상의 최대 1.5% 정도를 코로나 중증환자 전담치료병상으로 확보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동원령으로, 지난해처럼 행정명령도 조만간 내릴 것으로 보인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르면 정부는 감염병 유행 기간 중 의료기관의 시설을 동원할 수 있다. 지난해 병상 부족으로 확진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숨지는 사례가 나오자 사상 처음으로 국립대병원과 상급종합병원에 허가 병상의 1% 이상 동원령을 내린 적 있다. 그때 이후로 이미 병상의 1%는 코로나 환자를 볼 수 있게 늘려둔 상태인데 병상을 더 확보하라고 병원들을 압박한 것이다. 이 회의에서 정부는 수도권 허가 병상 700병상 종합병원(9곳)에 1%(51병상), 상급종합·국립대병원에 1.5%(120병상)의 병상을 각각 확보하도록 해 총 171 병상을 추가로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확진자 추이 등을 바탕으로 지자체와 의료기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명령 시점을 결정할 예정으로 명령 후 2주 이내에는 병상 가동을 원칙으로 하는 걸 검토 중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이미 1%를 확보해놨는데 0.5% 포인트를 더 올리려면 10개 병상을 추가로 만들어야 한단 것”이라며 “인력 등이 도저히 감당 안 된다”고 말한다. 중환자를 내보내고 공간과 인력을 확보해야 하는 병원들 입장은 난처하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인력 지원은 안 해주면서 병원이 잘하고 있는데 더 잘해달라고 하니 회의 이후 단체 대화방에서 일부 병원장들이 성토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지금 같은 유행이 주기적으로 나타날 건데 병상 확보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며 “코로나 환자를 더 많이 보는 병원을 중증감염병센터 등으로 지정해 상응하는 수가를 별도로 배정해서 충분하게 지원해야 한다. 닥칠 때마다 ‘병상 몇 개 내놔라’가 아니라 환자가 늘면 늘어나는 데 맞게 수용, 진료할 수 있게 탄력적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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