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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잘러’의 욕망, 재택근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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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박수련 팩플 팀장

박수련 팩플 팀장

“평생 재택근무, 또는 연봉 3만 달러 인상. 둘 중에 뭘 택하시겠습니까.”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가 미국 애플·구글·아마존 등 주요 대기업 직원 3000명에게 올 4월 이런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64%가 ‘평생 재택근무’를 골랐다고 한다. 물가 싼 동네에서 교통체증에 시달릴 필요 없이 원격으로 일하는 삶의 가치가 연 3000만원 이상이란 의미다. 이들은 사무실 복귀를 내심 바라는 경영진에 “출근, 그거 꼭 해야 하냐”라고 되묻는다.

기업들도 응답하고 있다. 페이스북·트위터에 이어, 지난 10일엔 구글도 영구 재택근무를 허용하기로 했다. 대신 사는 곳에 따라 연봉을 최대 25%까지 삭감하겠다고 한다. 코로나19가 끝나든 말든 이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고, 혹은 거스를 필요가 없다는 판단일 게다. 전 세계 어디서든 일할 수 있게 해줘야, 인재를 붙잡을 수 있다. 이들 기업은 그걸 가능케할 기술이 있으니 시도 안 할 이유도 없다. 소프트웨어로 세상을 먹어치운 그들이다.

노트북을 열며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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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IT 기업들이 발 빠르다. 오프라인 사무실을 없애고 전직원이 가상세계에서 만나는 곳도, 영구 재택이든 주2일 출근이든 자율에 맡기는 곳도 있다. 눈에 안 보여도 일 잘하리라고 직원을 믿어야 하고, 성과 평가에 대한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멋진 사옥이 기업문화를 좌우하지 않는다는 자신감도 필요하다. 그래서 ‘일잘러’(일 잘하는 사람)가 이런 회사에 몰린다. 기업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다. 전국에서, 여차하면 세계 곳곳에서 인재를 수혈할 기회다.

뉴스레터 ‘팩플’이 이번주 구독자들에게 진행 중인 설문도 이 흐름과 통한다. ‘연봉 좀 줄어도 재택근무 계속하고 싶다’는 응답이 꽤 많다. 출퇴근 부담을 줄이고 싶다는 이유가 상당수. 한국인 통근 시간의 경제적 가치를 따져보니 연간 456만5300원(평균 출퇴근시간 58분, 시간당 평균 임금 1만9316원, 월평균 근로일수 19.7일의 12개월 분을 곱한 결과). 이 비용을 안 쓰고도 일이 잘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물론, 이런 움직임이 현재는 일부 얘기다. 작은 기업일수록, 혹은 서비스업처럼 대면 업무가 불가피할수록 재택은 언감생심이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까. 재택 불평등을 줄이고, 누구나 지금보다 더 안전한 곳에서,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길을 넓혀야 한다. 복잡하겠지만, 안 될 것도 없다. 데이팅·교육·쇼핑, 그리고 카지노까지 모두 온라인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게다가 누구나 손바닥에 인공지능 기기 한 대씩 들고 다니는 세상 아닌가. 무엇보다, 코로나19보다 더한 위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날이 언제 또 올 지 모르겠고, 좋은 직장으로 출퇴근할 수 있는 수도권의 집값은 너무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