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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재용 ‘반도체 코리아’ 위기 탈출에 전력 투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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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7일 만에 경영현장으로 돌아가는 이재용 부회장.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는 9일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허가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2월 5일 '국정농단' 항소심 선고 뒤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는 이 부회장. [연합뉴스]

207일 만에 경영현장으로 돌아가는 이재용 부회장.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는 9일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허가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2월 5일 '국정농단' 항소심 선고 뒤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는 이 부회장. [연합뉴스]

법무부 가석방 심사위원회는 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을 결정했다. 이 부회장이 형법상 복역률 60%를 넘겨야 허용되는 가석방 심사 기준을 지난달 말 채웠고, 경제 위기 극복에 기여해 달라는 국민 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을 비운 사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30년 만에 한 번 있을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1992년 삼성전자가 64K D램을 개발한 뒤 30년 넘게 주도해 온 글로벌 반도체 생산 체제에 미국이 다시 뛰어들면서다. 미국은 미·중 기술전쟁 승리를 위해 반도체 패권을 다시 거머쥐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그 속도를 앞당기기 위해 인텔이 생산능력을 재구축하는 동안 대만을 끌어들였다. 이렇게 반도체 산업의 판이 바뀌면서 삼성전자는 쫓기는 처지가 됐다.

삼성전자, 미국·대만 추격으로 쫓기는 처지 #경영 정상화 위해 가석방 넘어 사면 필요

대만 TSMC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타면서 각종 첨단장치에 들어가는 시스템반도체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입지를 굳히게 됐다. 이 분야 시장점유율이 56%에 달해 삼성전자(18%)의 3배가 넘는다. 삼성전자는 130조원을 투자해 2030년에는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세계 1위가 된다는 2030 전략을 세웠으나 그동안 리더십 공백 여파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런 비상 상황을 돌파하려면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가 필수적이다. 대규모 장치산업이나 다름없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수십조원의 투자 결정을 내리려면 기업의 전략을 결정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최고경영자의 결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역시 미국의 요청으로 17조원을 투자해 미 애리조나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200여 일간 진척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가석방된 것으로는 급한 불을 끄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네덜란드 ASML을 비롯해 반도체 핵심 장비를 공급하는 업체는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면 교섭에 제대로 응해 주지도 않는다. 수조원의 계약금이 오가는 일인 만큼 확고한 의사결정을 원하기 때문이다. 앞서 이건희 회장이 그랬듯 이 부회장이 쉴 새 없이 세계를 돌며 이들과 친분을 쌓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은 준법감시위원회를 통해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크게 바꿨다. 이 부회장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2세로의 경영권 승계 포기를 선언했다. 이제 이 부회장은 위기에 직면한 반도체 코리아의 위상을 지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해 리더십을 정상화하기 위해 정부는 가석방을 넘어 사면을 조속히 결단하기 바란다. 인텔의 추격과 TSMC의 질주, 일본의 반격과 중국의 반도체 야심까지 반도체 코리아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재판 현황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재판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