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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백신 접종 간격 갑자기 6주로 늘려놓고 사과도 없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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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스테판 반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와 화상 통화하고 있다. 청와대는 당시 통화 사실을 공개하며 백신 확보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스테판 반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와 화상 통화하고 있다. 청와대는 당시 통화 사실을 공개하며 백신 확보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사진 청와대]

백신 접종을 둘러싸고 또 한번 혼란이 빚어졌다. 정부가 미국 모더나사로부터 이달 공급받기로 한 코로나19 백신이 예정 물량의 절반 이하로 들어오게 되면서다. 갑작스러운 백신 부족 사태로 화이자·모더나 백신의 1, 2차 접종 간격이 4주에서 6주로 변경되면서 연쇄적인 차질이 빚어졌다. 의료기관에는 “내 접종 날짜가 갑자기 추석 연휴로 바뀌었다”는 항의 전화가 걸려온다. 귀성 계획이 틀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쏟아진다.

백신 차질에 모더나·화이자 접종 간격 늘려 #당장 맞을 백신 없는데, 국산 백신 희망고문

이런 와중에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는 국민을 더 화나게 한다. 지난해말 모더나 백신 확보 성과를 홍보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접종 속도를 높이라”는 막연한 주문만 내놓았다. “해외 기업에 휘둘리지 않도록 국산 백신 개발에 더욱 속도를 내고, 글로벌 허브 전략을 힘있게 추진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사과 한마디 없이 이번엔 외국 백신 제조사 탓을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밝힌 국산 백신도 너무 먼 얘기다. 2025년 세계 5위가 목표라는 프로젝트를, 당장 눈앞에 닥친 접종 변경에 당황해 하는 국민 앞에서 굳이 꺼내야 할까. 수시로 바뀌는 접종 일정과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1, 2차 접종 간격을 일방 통보받아야 하는 국민만 서러울 뿐이다.

1, 2차 접종 간격과 예방 효과의 상관관계도 명확한 설명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화이자 3주, 모더나 4주를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만 6주 간격으로 접종해도 백신의 효과가 있는 건지 불안하다. 정부는 이 부분을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어제 1차 접종률 70%를 강조하며 추석 전에 3600만 명 접종이 목표라고 했는데, 유독 1차 접종률에만 매달리는 게 의아할 따름이다. 내세울 게 그것밖에 없는지 모르겠으나 1차 접종만으로는 급속도로 퍼지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를 막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무시해도 되는 걸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1, 2차 백신 접종을 완료한 비율이 꼴찌다. 우리보다 국가경쟁력이 낮다고 여겨지는 국가들도 접종 완료율이 우리를 앞선다.

정부의 임기응변식 말 바꾸기와 자기 합리화가 반복되다 보니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 거짓인지도 헷갈린다. 정부가 백신 확보에 최선을 다하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다. 보건 당국은 이제라도 백신 확보 상황을 솔직하게 공개하고, 국민의 양해를 구하기 바란다. 상황을 적당히 모면할 궁리만 하고 있으니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안이한 판단으로 백신 확보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나머지 단추도 줄줄이 어긋나면 곤란하다.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을 활용해 백신이 모자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차선인지, 답을 구하고 결과를 국민에게 상세히 공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