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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꿈나무' 교육 나서 스타 창작자 키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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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사진=김태성 기자

"여자 기숙사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무대로 옮기면…"

"그 얘긴 그만 하시고. 관객 70%가 안 들면 수익이 안 나오는 데 그럴 때 우리 투자자들의 손해는 구체적으로 얼마나 됩니까?"

"그것까지는 아직 계산을 못 했는데…. 꼭 수익을 내겠습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설픈 투자 설명회. 그래도 열정과 패기가 넘쳐났다.

어떤 풍경? 지난달 초 서울 대학로 한 사무실에서 벌어진 '가상 투자 유치회'다. 투자자나 발표자 모두 '가짜'다. 발표자는 장래 프로듀서를 꿈꾸는 대학생 10명. 세 팀으로 나눠 평소 해보고 싶은 뮤지컬의 밑그림을 그리고, 그럴싸하게 포장한 뒤 "대박을 약속하니 돈을 보태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자자 역을 맡은 이들은 대학로 공연기획자들. 평소 실제 투자자를 상대로 진땀을 흘렸던 설움(?)을 분풀이하듯 날카롭고 예리하게 빈틈을 파고들었다. 비록 가짜 돈이지만 몇 억원씩 돈도 오갔다. 결국 가장 많은 돈을 끌어들인 한 팀이 최종 우승자로 결정되면서 '투자 게임'은 막을 내렸다.

이런 엉뚱한 실험을 기획하고 진행한 이는 현업 뮤지컬 프로듀서 김종헌(39)씨. 올 초 '쇼틱'(showtic)이란 회사를 차리고 지금껏 한국 뮤지컬계에서 한번도 하지 않은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창작 뮤지컬의 인큐베이터'는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자 기대다.

#가르치고, 만들고, 관리하고

이날 풍경은 그가 기획한 일주일짜리 프로그램 '프로듀서 클래스'의 마지막날 모습. 소재 개발, 예산 편성, 인사.조직 관리, 투자 유치 등이 커리큘럼이었다. 그가 직접 강의하기도 했고, 신시 뮤지컬 컴퍼니.CJ 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뮤지컬계의 내로라하는 실무자들이 초빙되기도 했다. 낮에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저녁엔 최근 인기 있는 뮤지컬을 차례로 관람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수업에 참여한 장현기씨는 "대학에서, 심지어 인턴 과정에서도 한번도 배우지 못한 뮤지컬 기획의 적나라함을 몸소 겪었다"고 평가한다. 수업료는 겨우 10만원. 뮤지컬 티켓 값도 안 나오는, 손해 나는 교육 과정이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그는 똑같은 형식으로 10월엔 대본.작사 과정을, 내년 초엔 작곡.음악 감독 과정을 편성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그가 차린 '쇼틱'이란 회사는 뮤지컬 교육 기관일까? 오히려 '과외 수업'에 불과하다. 그는 올 하반기에만 무려 4편의 창작 뮤지컬 프로듀서를 맡는다. 일찍이 한국 뮤지컬 역사상 한 사람에 의해 이렇게 단기간에, 이토록 많은 작품을 올린 경우는 없다. 그런데 뮤지컬 만드는 방식이 조금 색다르다. '쇼틱'의 주도 아래 작품을 만든 뒤 제작은 외부에 넘기기도 하고(키스 미 타이거.살인사건), 혹은 '쇼틱'과 외부 제작사의 공동 제작 방식(컨페션.첫사랑)을 취하기도 한다. 하나의 뮤지컬 회사가 기획.창작.제작을 몽땅 혼자서 짊어지고 가는, 기존 뮤지컬을 만드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이런 영역 파괴, 대량 생산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창작 콘텐트의 개발'과 함께 작사.연출.작곡 등 '창작자 매니지먼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쇼틱'에 소속된 창작자는 모두 33명. 조광화.오은희 등 중견 작가를 비롯, 왕용범.장유정.성재준.김혜성 등 신예 그룹도 속해 있다.

'쇼틱'은 이런 창작자 그룹의 작품을 독점적으로 갖지 않고, 외부 제작사에 소개하는 '공연 중개업'도 하고 있다. 지금껏 성사된 계약은 모두 15건. 계약 성사 시 '쇼틱'에 떨어지는 수임료는 겨우 1%.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이제 막 꽃이 피려는 창작 뮤지컬을 위한 투자라 하겠다.

#부닥쳐라, 그리고 두드려라

명지대 재학 시절, 극단 손가락의 조연출로 공연계에 입문한 그는 10년간은 연출.배우로, 또 다른 10년간은 공연 기획자로 달려왔다. 1997년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무작정 영국행을 감행했다. 돈이 모자라 유학 직전 두 달간 택시기사를 하기도 했다. 2년6개월간 영국 생활에서 그가 한 것이라곤 고작 빵 만들기 아르바이트와 영국인들과 탁구 치기. "세계적인 뮤지컬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 회사에서 일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됐죠. 그렇다고 상아탑에 갇혀 학위를 받는 게 제 길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현지인들과 살을 맞대고 함께 생활하는 게 제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라 믿었죠. 주말에 33시간 노동을 하는 건 죽을 맛이었지만."

이런 밑바닥 경험이 그의 도전 의식과 추진력을 만들었을까. 국내 복귀 후 PMC로 돌아간 그는 난타 전용관 건립, 난타 미국 뉴욕 진출의 주도적 역할을 한다. 이후 프로듀서로 변신, 창작 뮤지컬 '달고나' '뮤직 인 마이 하트' 등을 연이어 히트시켰다.

그가 현재 가장 역점을 두는 건 '스타 창작자'를 배출하는 일. "앤드루 로이드 웨버나 팀 라이스, 혹은 손드하임처럼 작곡.작사가만 보고도 관객이 찾을 만큼 역량 있는 창작자를 탄생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과거 '감독 예술'이었던 영화가 90년대 중반 차승재.심재명 등의 등장과 함께 '프로듀서 시대'를 연 것처럼 훗날 한국 창작 뮤지컬이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다면 '프로듀서 김종헌'이란 이름도 빠지지 않을 듯싶다.

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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