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테러, 보이콧·역병 뚫고 ‘지구촌은 하나’ 축제 계속된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24 00:23

업데이트 2021.07.24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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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6호 07면

[SPECIAL REPORT]
여기는 2020 도쿄올림픽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육상 4관왕인 미국의 제시 오웬스(가운데). [사진 독일연방문서보관소]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육상 4관왕인 미국의 제시 오웬스(가운데). [사진 독일연방문서보관소]

23일 개막한 도쿄 2020 여름 올림픽에는 코로나19 대유행에도 난민 대표단을 포함한 전 세계 206개 국가·조직이 참가했다. 지난 4월 방역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한 북한만 빠졌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류가 불굴의 의지를 보인 대회로 기록될 것이다. ‘감동으로 하나가 된다(United by Emotion)’는 이번 대회 슬로건대로 스포츠라는 인간 드라마를 통해 역병에 당당히 맞서는 인류의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올림픽은 흔히 ‘참가 자체에 의미가 있다’지만 전염병 대유행으로 대회를 1년 연기하고 방역 조치 속에 운영하는 이번 대회만큼 개최와 참가 자체가 감격스러운 때도 드물다. 대회 연기는 처음이지만, 사실 근대 올림픽은 1896년 도입 이후 국제사회의 갈등을 고스란히 반영해왔다.

올림픽의 국제정치학
전쟁으로 반납·취소되기도
인류의 모순 치유, 위기 극복
스포츠만큼 강한 수단은 없어

보이콧 사태가 대표적이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 때는 27개국이 불참했다. 당시 뉴질랜드가 반인륜적인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 분리) 정책으로 국제 제재를 받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서 경기를 치른 게 문제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뉴질랜드의 몬트리올 대회 참가를 금지하지 않자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와 이라크 등이 올림픽에 등을 돌렸다. 결국 보이콧에 동참한 29개국을 뺀 92개국 6084명만 참가해 대회가 열렸다.

80년 모스크바 대회는 56년 이후 가장 적은 80개국 5179명 참가에 그쳤다. 소련이 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의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이 올림픽 보이콧을 주도했다. 결국 한국을 포함해 서방 진영 66개국이 불참했다. 참가국 중에서도 13개국은 국기 대신 올림픽기를 앞세웠고, 3개국은 국가올림픽 위원회기를 들고 각각 입장했다. 무언의 시위였다. 소련은 끝없는 소모전 끝에 89년 2월 아프가니스탄을 떠났다. 천문학적인 군사비로 인한 재정난은 공산주의 체제의 근본 모순과 함께 91년 12월 소련 몰락의 원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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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는 소련이 보복 보이콧에 나섰다. 하지만 북한·아프가니스탄·베트남 등 14개국만 동조했을 뿐 140개국 6829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몬트리올·모스크바·로스앤젤레스 대회는 올림픽을 정치로 얼룩지게 한 행사로 기억된다. 88년 서울 대회는 오랜만에 전 세계가 모두 함께한 올림픽으로 평가된다.

올림픽을 테러의 볼모로 잡는 일도 있었다. 72년 뮌헨 대회는 중동의 모순과 폭력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당시로선 적지 않은 72개국 7170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지만, 대회 기간 중 비극적인 뮌헨 참사가 터졌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인 검은 9월단의 무장대원들이 선수촌에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인질로 잡았다가 전원을 살해했다. 경기는 인질극이 시작되면서 전면 중단됐으나 사건이 종료되자 재개돼 폐막식까지 마쳤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올림픽을 계속해야 한다는 인류의 의지를 보여준 대회로 평가된다.

당시 올림픽기와 참가국인 이스라엘 국기가 처음으로 조기로 게양됐다. 이스라엘의 대외정보공작기관인 모사드는 테러 관련자 20여 명을 보복 살해하는 ‘신의 분노 작전’을 펼쳤다. 뮌헨 참사를 겪은 뒤 올림픽의 보안과 경비가 강화됐으며 안전 올림픽이 강조됐다.

전쟁으로 올림픽을 반납하거나 취소한 일도 있다. 군국주의 일본은 나치 독일이 개최한 36년 베를린올림픽 다음인 40년 대회의 개최권을 확보했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여름 올림픽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37년 중일전쟁(37년 7월 7일~45년 9월 2일)을 일으키면서 각의에서 올림픽 개최권 반납을 결의했다. 유치했던 올림픽을 자국이 일으킨 침략 전쟁에 집중하기 위해 스스로 포기한 유일한 사례다.

40년 대회 개최권은 핀란드의 헬싱키로 넘어갔다. 하지만 공산주의 소련이 39년 핀란드를 침공해 겨울 전쟁(39년 11월 30일~40년 3월 13일)을 일으키면서 이 대회는 결국 취소됐다. 44년 런던 올림픽도 나치·파시스트·군국주의와의 전쟁으로 열리지 못했다. 올림픽은 종전 뒤인 48년 런던올림픽으로 재개됐다.

근대올림픽을 전쟁으로 중지한 것은 그전에도 전례가 있었다. 1916년 베를린 여름 올림픽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된 게 최초다. 1차대전 뒤인 36년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지만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는 이를 게르만족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선전장으로 만들려고 시도했다. 이들에게 일침을 가한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스포츠 선수였다. 미국의 아프리카계 제시 오언스(1913~80년) 선수가 100m, 200m, 400m 계주, 멀리뛰기에서 각각 금메달을 따서 4관왕에 올라 나치의 인종주의에 강펀치를 날렸다.

인류의 모순을 치유하고, 인간적인 가치를 고양하며, 위기 앞에서 극복 의지를 보여주는 데 스포츠만큼 강한 수단은 없었다. 도쿄 2020년 올림픽 개최의 가장 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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