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빛바랜 흑백 사진 속 예쁜 엄마 얼굴

중앙일보

입력 2021.07.19 13:00

[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79)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와~~’하고 탄성을 질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 하는 짧은 감탄 뒤에 울컥하는 목울음이 밀려온다. 빛바랜 사진 속의 엄마는 너무도 젊은 모습이다. 하지만 마땅히 즐겁고 신기해야 할 일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젊은 시절 빛나는 모습을 보는 일에는 이처럼 복잡한 마음이 교차한다. 그리고 시간이 참 야속함을 느낀다.

‘엄마는 이뻤다’, 2021, 갤럭시탭S6,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엄마는 이뻤다’, 2021, 갤럭시탭S6,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아~ 옛날이여! 엄마는 예뻤다

연로하신 친정엄마의 서랍엔 온갖 물건들이 쌓여있다. 사려 깊지 못한 딸자식의 눈에는 당장 내다 버려도 하나도 아쉽지 않은 물건들이다. 당신이 그나마 건강하실 때 다니던 복지관의 안내 책자, 일본어 교재, 민요 악보 등은 이미 십 년도 넘었다. 수십 년 된 두꺼운 가계부도 여기저기 빛이 바랜 채로 틈바구니를 차지하고 있다. 당연히 뽀얀 먼지가 사뿐히 내려앉은 상태다. 이때다 싶었다. 오늘은 엄마 방 대청소다!

"그것도 버릴래? 이것도 버리려고?" 사소하나마 자신의 물건들이 버려지는 게 못내 아쉬운지 엄마의 잔소리가 날아왔다.

사실 난 그다지 깔끔한 편이 못 된다. 내 집안도 제때 치우지 못하고 사는 주제인데 그날은 왜 그랬을까? 장롱 가득 서랍 가득 쌓여있던 엄마의 물건(지나고 보니 엄마의 역사였다)이 눈에 거슬렸다. 마구잡이로 커다란 비닐봉지에 이것저것 쓸어 담기 시작했다. 땀이 비 오듯 했지만 차츰 빈 곳을 드러내는 공간이 주는 여유는 시원했다.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보자는 마음으로 방 모서리 틈에 세워져 있던 서랍장을 열었다.

그때였다. 툭! 하고 뭔가가 떨어졌다. 작은 사진이었다. 여권 사진 크기만 한 흑백사진엔 멋진 여인이 웃고 있었다. 엄마다! 난 반가워서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반가움이 일초도 가지 않았다는 거다. 엄마가, 우리 엄마가 이렇게 젊고 예뻤구나…. 당연한 걸 가지고 왜 울컥 슬퍼지는 것일까

흑백 사진 속에 남겨진 야속한 세월

1960년대로 추정되는 시절의 엄마 흑백사진 [사진 홍미옥]

1960년대로 추정되는 시절의 엄마 흑백사진 [사진 홍미옥]


과장해 말하면 겨우 엄지손톱만 한 흑백사진이다. 그나마 아직은 돋보기의 도움 없이 사진을 훑어볼 수 있는 게 다행이지 뭔가. 엄마가 언제 이 사진을 찍었는지 확실치 않았다. 이내 추리에 들어갔다. 평소 추리소설 꽤나 좋아하는 난 이런 게 마구 신나는 일이다. 한 눈에도 멋쟁이가 입었음 직한 저 원피스. 후딱 검색해보니 1960년대 초중반에 세계적인 유행이었다고 나와 있다. 유명 디자이너 지방시가 디자인하고 오드리 헵번, 재클린이 입어 더 인기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태어났거나 아니면 곧 태어나거나 할 즈음인 것이다. 패션은 저 멀리 유럽에서 대한민국 서울로 명동으로 지방으로 퍼져갔을 것이다. 물론 동네 양장점 주인의 재봉틀에서 태어난 옷이었음은 분명하다. 당시 공무원이었던 친정아버지는 군산과 전주를 오가며 근무를 하고 있었다. 사진 뒤쪽에 바다가 보이는 거로 봐선 두말할 것도 없이 군산이다.

그렇다면 나의 멋쟁이 엄마가 서 있는 곳은 어디일까? 바다와 소나무 언덕길로 이름난 월명공원이 아닐까 싶다. 아! 엄마는 아빠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군산에 가셨구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급히 온 아빠는 공원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맛있는 식사도 했을까? 마치 복고풍 아침 드라마를 틀어 놓은 것 같은 착각에 난 신이 났다. ‘엄마! 이 사진 기억나세요? ’

서로를 몰라보는 그림 속 여인들

엄마의 젊을적 모습을 그린 그림과 2년전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을 같은 화면에 합쳐보았다. [그림 홍미옥]

엄마의 젊을적 모습을 그린 그림과 2년전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을 같은 화면에 합쳐보았다. [그림 홍미옥]

난 지금의 나보다 이십 년도 훨씬 젊은 엄마를 그리기 시작했다. 모바일그림 앱엔 크레파스 툴이 따로 있다. 크레파스를 꼭 쥐고 도화지 위에 또박또박 그리는 것 마냥 태블릿 위에 ‘이쁜 엄마’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해전에 그렸던 엄마를 함께 얹어 보았다. 편리한 디지털 세상은 클릭 몇 번에 두 그림이 어우러진다. 그림 속 두 엄마의 속엣말이 들리는 것 같다.

‘저 할머니는 누굴까? ’, ‘아이고~ 저 아기 엄마 참 곱네’ 하고 말이다. 부모님의 옛 사진을 보는 일은 그리 신나는 일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의 엄마, 아니 우리 모두의 엄마는 젊었으므로 빛나고 예뻤음에 틀림없다. 그래도 세월이란 건 참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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