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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변혁<1>무너지는 얄타체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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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독일인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민족인 날」이었던 지난 10일 독일분단의 상징인 베를린장벽이 열리기 몇 시간 전 콜 서독 총리는 서베를린시 의사당 앞 광장에 모인 수많은 군중들을 향해 2개의 독일이 하나됨을 외쳤다.
이 외침이 마침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 며칠간의 독일사태는 2차대전 이후 45년에 걸친 분단사를 단숨에 뒤엎는 엄청난 변혁들이 아닐 수 없다.

<통독엔 내심 우려>
독일분단은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인한 인류에 대한독일인들의 과오의 대가로 독일에 가해진 형벌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독일의 통일이 독일인만의 문제는 아니며 인류, 특히 유럽인들의 공통관심사다.
전후 유럽은 분단된 독일을 전제로 한 얄타체제에서 동서간 균형을 유지, 안정을 누러왔다. 그러나 지금 독일이 다시 하나가 되는 마당에 유럽은 다시 한번 큰 변화를 예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번 독일사태를 보는 외국들의 입장은 대동소이하다. 즉 베를린장벽이 일부 붕괴된 것은 잘 된 일이긴 하나 독일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은 우려한다는 것이다.
부시미대통령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잘된 일이지만 독일통일에 대해서는 독일인들의 「주의 깊은」행동이 요구된다고 평했다. 그는 또 다음달 지중해 몰타에서 있을 미소정상회담이 역사적으로 더욱 중요한 회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 이 회담에서 독일문제를 포함해 유럽의 새로운 질서문제를 다룰 것임을 시사했다.
소련외무성 게라시모프대변인은 동독정부의 여행자유화조치를 찬양하고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을 환영하면서도 독일통일문제는 이번 조치와 전혀 별개의 먼홋날의 문제라고 못박았다.
프랑스·영국 등 과거 오랫동안 독일과 라이벌 관계로 많은 피해를 직접 보았던 나라들은 겉으로는 환영의 뜻을 표했으나 내심 경계의 빛을 감추지 않고 있다.
전 프랑스 대통령이자 현재 유럽의회의 중요지도자인 지스카르는『현재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유럽연방이지 독일연방이 아니다』라고 독일통일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독일이 통일의 길로 간다고 가정할 경우 여러 가지 문체가 고려돼야만 한다. 우선 유럽을 동서로 나누고 있는 군사블록, 즉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미군 25만·소군 38만>
서독과 동독은 각각 양군사 블록에서 극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서독없는 나토란 생각할 수 없으며, 특히 미국은 서독에 25만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독일이 통일되고 미군이 서독에서 철수할 경우 유럽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동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련은 바르샤바조약군 명목으로 동독에 20개사단 38만명의병력을 주둔시키면서 동독을 대서방 군사전략의 전초기지로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소련은 고르바초프의소위「유럽의 공동의 집」이론에 따라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 각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유럽구축을 주장하고,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함께 해체할 것을 주장해 왔다.
다음으로 EC(유럽공동체)문제가 있다. 오는 92년 유럽의 경제통합을 앞두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유럽합중국을 목표로 하고 있는 EC는 독일통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현재 EC에서 서독의 경제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EC의 전체 경제력 중 서독이 차지하는 경제력은 26%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그것을 합한 것보다 더 크다. 만약 동·서독이 하나로 될 경우 독일의 경제력은 EC 전체의 33%를 넘게된다.


기왕에 서독과 동독은 무역거래에 있어 국내거래를 적용, 무관세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동독은 사실상「EC의제13번째 국가」로서 행세해 왔다.
그러나 이번 동·서독관계의 극적변화로 동독의 EC 정식가입문제가 긴급과제로 대두되었으며, 그럴 경우 이미 EC가입의사를 밝힌 헝가리, 그리고 폴란드의 EC가입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EC와 나토로 이뤄진 서유럽 경제-군사공동체 구상은 크게 변질될 수밖에 없으며, 다른 한편으로 바르샤바조약기구와 코메콘(동유럽 상호 경제원조회의)으로 결속된 동유럽 블록도 그 기본구도가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배경 때문에 오늘날의 동독사태에 쏟는 세계의 관심은 클 수밖에 없다.
특히 동독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이제 겨우 그「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수주일 후에 있게될 동·서독정상회담의 결과가 극히 주목되고있다.「통독」문제를 제외한 모든 문제가 논의될「콜-크렌츠회담의 결과에 따라 동독사태는 전체유럽, 나아가서는 동서냉전사에 하나의 전기를 이룰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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