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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카스트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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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당신은 기숙사 생활을 즐겼다고 하더군요. 교내 평가는 좋지 않았지만 말이에요. 아버지는 그럴 바에야 공부를 집어치우라고 엄포를 놓았지요. 당신은 항변했어요. 학교 다니려면 아버지 도움이 필요하다고요. 협박도 했다지요. 도와주지 않으면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요. "고집을 부리면 통한다." 당신이 인생의 첫 번째 위기에서 얻은 교훈이라고 하더군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지요. 알브레흐트 하게만이 쓴 '피델 카스트로'에 잘 소개돼 있더군요.

당신은 변호사답게 말을 잘했어요. 독특한 화술로 대중에게 최면을 걸곤 했지요. 당신은 묻고 청중은 답하는, 문답식 화법이지요. 당신은 연설 말미에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곤 했어요. 청중은 "우리는 승리하리라"고 화답했고요.

당신은 행동하는 혁명가였지요. 1953년엔 총을 들고 정부군 습격에 나섰다 체포됐고요. 재판에서 "역사는 내게 무죄를 선고할 것"이라고 한 최후 진술은 명언으로 남았어요. 2년 뒤 특사로 석방됐고, 이듬해 또다시 총을 들고 게릴라전을 시작했지요. 트레이드 마크인 긴 수염은 그때부터 길렀다고 하더군요. "정복되지 않는 자"라는 명성도 얻었고요. 59년 당신은 마침내 쿠바 혁명을 성공시켰어요.

당신의 장기 집권엔 미국의 도움이 컸다고 하더군요. "흰색과 분홍색도 있는데 미국의 반공주의자는 오직 붉은색만 보려 한다." 60년 흐루쇼프가 쿠바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비웃은 말이지요. 당신을 빨갛다고 일찌감치 단정한 미국의 제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지요. 그러나 그 덕분에 당신은 내정 실패의 책임을 간단하게 넘길 수 있게 됐어요. 문제가 생기면 검지 손가락을 들어 플로리다 해안 저편의 미국을 가리키면 됐으니까요.

당신이 87년 한 이탈리아 언론인과 나눈 대화를 기억하나요. 당신은 그때 플라톤이 이상적이라고 말한 국가 원수의 나이는 60세인데, 이게 오늘날의 나이로는 80세라고 했다지요. 13일로 당신은 80세를 맞습니다. 한데 얼마 전 건강 문제로 쿠바 공산당 서기직을 동생 라울에게 '잠시' 넘겼다고 하더군요. "혁명가는 은퇴하지 않는다"고 한 당신이었기에 놀란 사람이 많았지요. 당신은 47년간 권좌에 있었어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한 국가 원수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에게도 이젠 떠날 때가 찾아온 것 같군요.

유상철 국제부문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