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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바람」에 "변신"불가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 35년간 불가리아를 통치해온 독재자 토도르 지프코프가 10일 전격 사임함으로써 동유럽 민주화개혁은 드디어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소련의 정치노선을 충실히 추궁, 동유럽 국가 중「소련학교의 우등생」으로 평가돼온 불가리아는 일찍부터 소련 식 개혁노선을 채택, 경제개혁을 과감히 추진해왔다.
그러나 정치에서만은 지프코프 서기장 1인 독재를 계속 고수, 일체의 정치개혁을 용납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국내 반체제 세력들을 탄압해왔다.
지프코프의 전격사임 이유는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고령(78세)에서 오는 건강악화가 주된 이유로 전해지고 있다.
불가리아 공산당의 신임서기장으로 선출된 페투르 믈라데노프는 정치노선으로 볼 때 중도적 입장의 온건파로 지난 71년 35세의 젊은 나이로 외무장관에 취임한 이래 18년 간 외무장관직을 지키면서 지프코프를 보좌해왔다.
제2차 대전 중 반파시즘 운동에 참여했다가 사망한 레지스탕스 대원을 아버지로 둔 믈라데노프는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소피아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소련에 유학, 모스크바의 엘리트 양성소인 국제관계대학에서 수학했다.
그의 정치적 입장은 폴란드의 개혁에 대한 반대의사 표명, 지난번 중국의 6·4 천안문 사태에서 중국정부 지지 등으로 보수성향을 나타낸바 있으나 최근 수개월동안 상당한 변화를 보여 진보입장으로 선회한 감을 주고 있다.
지난주 소피아에서 열린 국제환경단체회의를 당 지도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최토록 허용, 이 회의에 참석했던 불가리아 내 환경 보호론자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임으로써 한때 그의 실각 설이 나돌기도 했다.
세련된 외교관 출신으로 신중한 개혁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로 평가되는 믈라데노프 신임 서기장은 무엇보다 우선 정치개혁을 추진할 것이다.
그 동안 불가리아 지도부는 보수파와 개혁파가 대립해왔으나 현재 보수파가 우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7월 열린 당 중앙위 총회에서 개혁의 즉시 실시를 요구한 개혁파 지도자 알렉산드로프와 토도로프 양 정치국원이 실각, 그 후 개혁파는 세력을 잃고 있다.
따라서 믈라데노프 신임서기장은 우선은 당내 보수파들의 눈치를 살려 온건개혁노선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가는데 주력할 것이다.
이번 불가리아의 지도부 개편으로 동유럽 민주화는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체코·루마니아 등 주변국가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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