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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 생겨 못갔어" 故이춘연의 개막인사…부천영화제 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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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유튜브로 생중계된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식에는 지난 5월 작고한 '여고괴담' 제작자 고 이춘연 대표(맨 오른쪽)가 딥페이크 기술을 통해 무대 위 스크린에 깜짝 등장했다. [사진 BIFAN]

8일 유튜브로 생중계된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식에는 지난 5월 작고한 '여고괴담' 제작자 고 이춘연 대표(맨 오른쪽)가 딥페이크 기술을 통해 무대 위 스크린에 깜짝 등장했다. [사진 BIFAN]

“노고 많았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내가 요번에 사정이 생겨서 못 가게 됐는데…. 뭐여 이게 다 좋은데 표정들이 왜 이렇게 심각해.”

8일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제작자 고 이춘연 대표 추모 '여고괴담 테마공연 #딥페이크 기술로 개막식 중 고인 깜짝 출연 #'여고괴담2' 김태용·민규동 22년만에 공동연출

8일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식을 울렸다 웃겼다 한 영화 ‘여고괴담’ 시리즈 제작자 고(故) 이춘연 씨네2000 대표 대사다. 이날 부천시청에서 열린 올해 개막식은 BIFAN 특유의 환상성과 기술력이 뭉클하게 빛난 무대였다.

영화제 측이 지난 5월 향년 70세로 갑작스레 작고한 충무로 맏형 이 대표의 추모 공연 형태라고 예고한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로 데뷔한 김태용‧민규동 감독이 22년 만에 공동 연출을 맡았고, 같은 영화 출신 배우 김규리가 사회로 뭉쳐 가상의 부천영화여고 교실을 무대로 산자와 망자가 뒤섞인 ‘여고괴담’ 세계관을 펼쳐냈다. 공연 무대에 BIFAN 명예조직위원장인 장덕천 부천시장, 정지영 BIFAN 조직위원장, 신철 집행위원장이 여고 교사로 등장하고 배우 이설·김소혜·리우진 등이 학생으로 출연해 주목을 끌었다.

'여고괴담 2' 김태용·민규동 22년만 개막식 공동연출

8일 오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 공연에 참여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주역 민규동 감독(왼쪽부터), 배우 김규리, 김태용 감독이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8일 오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 공연에 참여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주역 민규동 감독(왼쪽부터), 배우 김규리, 김태용 감독이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이 대표는 ‘명예 심사위원’이란 소개와 함께 딥페이크 AI 기술을 통해 무대 위 스크린에 깜짝 등장했다. 최근 TV 예능 등에서 호응을 얻은 딥페이크 기술이 영화제 개막식에 활용된 것은 처음이다. 영상 속 그는 김규리와 실시간 화상 통화를 하듯 대화도 나눴다. 전화 연결이 자꾸 끊기는 듯한 설정조차 리얼했다. “자기 하고 싶은대로 했으면 됐지, 그런 영화가 가장 보기 좋다”며 “우리가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 하여튼 잘 버티시길 바란다. 다들 힘내서 좋은 영화 많이 만들고 많이 보자”고 당부했다. 영화제 측이 부랴부랴 두 감독에게 의뢰해 불과 3주도 채 안 돼 공연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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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가) 영화제에 애정이 엄청났던 분이고 매해 오셨기 때문에 올해도 당연히 명예 심사위원으로 초대했죠. 멀리 있어서 연결이 잘 되지 않지만 여러 가지로 힘들지만 괜찮다, 많이 만들고 많이 보자, 그런 메시지를 남기셨을 것 같았어요.” 개막식 후 본지와 통화에서 민규동 감독의 말이다.

공포영화 '여고괴담' 테마 공연 형태로 진행된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식에서 가수 선우정아는 고 이춘연 대표가 딥페이크로 등퇴장한 직후 무대에 올라 자작곡 '그러려니'를 불렀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그리운 마음은 막지 못해~”란 내용의 가사다. [사진 BIFAN]

공포영화 '여고괴담' 테마 공연 형태로 진행된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식에서 가수 선우정아는 고 이춘연 대표가 딥페이크로 등퇴장한 직후 무대에 올라 자작곡 '그러려니'를 불렀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그리운 마음은 막지 못해~”란 내용의 가사다. [사진 BIFAN]

김태용 감독은 “민규동 감독과 옛날 ‘여고괴담 2’ 했던 때처럼 매순간 같이 얘기하고 결정하며 진행했다. 무엇보다 이춘연 사장님에 관한 마음이 전달될 수 있게, 너무 무겁지 않은 방법을 생각했다”고 했다. 이 대표의 생전 모습을 최대한 모으고, 여기에 (외모와 목소리가 닮은 조카) 배우 리우진이 대사 연기 등을 통해 딥페이크 구현 과정에 참여했다. 올초 드라마 ‘빈센조’(tvN)의 큰스님 역으로 눈길 끈 리우진은 개막 무대에도 올라 스크린 속 이 대표 등장에 눈물을 훔치는 듯했다.

딥페이크로 고인 깜짝 재회 "판타스틱 추모 영상" 

개막식은 유튜브로도 생중계 됐다. 코로나19 거리두기로 인해 개막식장(어울마당)엔 정원의 20% 가량인 관계자 91명만 참석한 터. 대다수 관객이 지켜보던 유튜브 댓글창엔 “실시간은 아니겠죠” “부천만이 모실 수 있는 심사위원. 판타스틱한 추모 영상이네요” 등의 반응이 잇따랐다. 모은영 BIFAN 프로그래머는 “항상 영화제 개막식이 똑같은데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했다”면서 “김태용 감독이 ‘청춘의 십자로’(영화 변사극) 등을 해온 만큼 공연과 영화의 접점을 잘 살려냈다”고 자평했다.

지난해 BIFAN에서 최초 공개한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가 지난달 개봉하면서 ‘여고괴담’ 시리즈는 이 대표 유작이 됐다. 1998년 1편으로 한국형 학원 공포물이란 새 장르를 개척해 흥행에 성공한 이 시리즈는 20년 넘게 호러퀸을 탄생시키며 신인 여성 배우의 등용문이 돼왔다. 민규동 감독은 “시리즈 내 성공과 실패가 있지만, 장르의 재미와 메시지에 있어 자기 방식의 생존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록적인 시리즈”라고 의미를 짚었다.

개막작은 대만 사후세계 판타지 '만 년이 지나도…'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작인 대만 영화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화상 기자 회견이 부천시청 내 판타스틱큐브 상영관에서 열렸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 원작 소설가이자 연출을 맡은 구파도 감독과 주연 배우 왕정, 가진동, 송운화가 참석해 한국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나눴다. [사진 BIFAN]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작인 대만 영화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화상 기자 회견이 부천시청 내 판타스틱큐브 상영관에서 열렸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 원작 소설가이자 연출을 맡은 구파도 감독과 주연 배우 왕정, 가진동, 송운화가 참석해 한국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나눴다. [사진 BIFAN]

올해 BIFAN은 개막작도 사후세계에 관한 영화였다. 전 세계 최초로 부천에서 베일을 벗는 대만영화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로 대만 로맨스 영화의 흥행을 이끈 스타 작가 겸 감독이자 ‘몬몬몬 몬스터’(2017)로 BIFAN 관객상을 받았던 구파도가 자신의 소설을 직접 각색해 연출했다. 벼락에 맞아 죽은 청년이 인간으로 환생하기 위해 월하노인 업무를 수행하다 생전 연인에 대한 기억을 되찾으며 영원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 성장담을 그렸다. ‘그 시절…’에도 출연한 대만 로맨스 스타 가진동, ‘나의 소녀시대’(2015) 등이 한국에서도 사랑받은 송운화, 공포영화 ‘반교: 디텐션’(2018)으로 타이페이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왕정 등 화려한 출연진이 모여 멜로‧공포‧모험‧액션‧코미디 등 장르를 넘나들며 몰입도 높은 연기를 펼쳤다.

25주년을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작에는 대만 판타지 로맨스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가 선정됐다. 사진은 극중 사후세계 월하노인격 캐릭터를 연기한 주연 배우 왕정과 가진동. [사진 BIFAN]

25주년을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작에는 대만 판타지 로맨스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가 선정됐다. 사진은 극중 사후세계 월하노인격 캐릭터를 연기한 주연 배우 왕정과 가진동. [사진 BIFAN]

세 주연 배우와 개막일 오전 화상 기자회견에 참석한 구파도 감독은 “한국의 범죄영화를 좋아하고 ‘엽기적인 그녀’ 같은 영화들을 참고하기도 했다”면서 “이 영화 찍을 때 와이프가 임신 중이었는데 탄생과 죽음은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인 게 아닌가 생각했고 그게 큰 주제였다”고 했다. 또 “‘신과함께’를 봤는데 너무 잔혹했다. 죽어서 심판을 받다니 살아있는 동안 많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저는 사후세계가 영화에서 묘사한 것 같기를 간절히 바라며 만들었다. 살아있을 때 완성하지 못한 일들, 수많은 아쉬움을 죽어서도 완성해나갈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올해 BIFAN 개막식은 레드카펫 행사를 취소하고 철저한 방역 속에 진행됐다. 정부의 코로나19 거리두기 지침 단계별로 개최 가이드라인을 정해뒀다. 예년보다 개최 규모를 축소하고 지난해에 이어 온‧오프라인 상영을 병행할 예정이다. 상영작은 47개국 257편. 이 중 147편을 ‘웨이브’에서 볼 수 있다.

영화제는 18일까지 열하루 동안 부천시청‧CGV소풍, 쓰레기 소각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부천아트벙커 B39 등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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