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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빠, 또 낡은 관사 가야 돼?" 전셋값 폭등에 군인들이 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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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 올해 초 경기도 화성시의 한 부대에 근무하는 A 대위는 이사 문제로 고민이 깊어졌다. 집주인이 들어오겠다고 하는 바람에 주변 아파트 전세 시세를 알아보면서다.

대부 한도 3년째 그대로인데 #수도권 전세가 1억 가까이 올라 #생활불편, 자녀교육, 간섭 싫지만 #"민간 아파트 입주, 하늘의 별따기"

2년 전 A 대위가 부대에서 멀지 않은 29평형(전용 74㎡) 신축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갈 때만 해도 큰 부담이 없었다. 당시 전세가는 2억2000만원. 주거가 불안정한 군인들을 위한 정부의 무이자 대부 제도(임대지원금)를 이용하면 2000만원만 더 내면 되는 수준이었다.

지난 4일 KB국민은행 월간 주택가격 동향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아파트값은 올해 상반기에 12.97% 올라 역시 작년 연간치(12.51%)를 뛰어넘었다. 상반기 기준으로 2002년(16.48%) 이래 19년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사진은 이날 오후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연합뉴스]

지난 4일 KB국민은행 월간 주택가격 동향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아파트값은 올해 상반기에 12.97% 올라 역시 작년 연간치(12.51%)를 뛰어넘었다. 상반기 기준으로 2002년(16.48%) 이래 19년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사진은 이날 오후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그새 A 대위가 사는 아파트 전세가는 3억8000만원선까지 뛴 상황. 금전적인 부담이 1억6000만원으로 8배나 커진 셈이다.

결국 A 대위는 군 관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는 “두 아이를 데리고 좁고 낡은 관사로 돌아가는 게 정말 싫고 미안했다”며 “하지만 외벌이 가정에서 감당하기에는 대출금 부담이 너무 컸다”고 말했다. 이어 “수도권이라 해도 외진 곳에 있는 군 관사의 경우 배달음식을 시켜도 잘 오지 않을 정도로 생활 환경이 불편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임대지원금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수도권 전세가 폭등에 A 대위처럼 유탄을 맞고 군 관사로 유턴하는 군인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정부의 군인 임대지원금은 현실과 괴리돼 있다.

국방부가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이후 임대지원금 한도는 동결된 상태다. 정부는 지역별 전세 시세(한국부동산원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아파트 중위 전세가 활용)를 반영해 5개 구간(급지)으로 나눠 임대지원금 한도를 정한다.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문재인 정부 들어서 수도권 전세가가 급격히 오르자 2019년부터는 1, 2급지의 한도를 각각 3개 구간씩 더 세분화했다. 임대지원금 한도가 가장 높은 서울ㆍ과천ㆍ성남(1-1급지) 등의 경우 2015~2018년 2억7000만원이던 것이 2019년부터 3억원으로 소폭 올랐다.

하지만 2018년 8월 4억5583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는 올해 1월 기준으로 5억8827만원까지 급등했다. 수도권 역시 같은 기간 3억1557만원에서 4억1000만원으로 뛰었다. 임대지원금 상승 폭보다 실제 전세가 상승 폭이 7000만원~1억원이나 더 큰 셈이다.

급기야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전세 품귀 현상까지 빚어지면서 갱신 계약이 아닌 신규 전세가는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한마디로 ‘갭’이 더 벌어질 태세다.

MZ세대, 간섭 많은 관사 싫지만  

그만큼 군인들의 살림도 팍팍해지고 있다. 맞벌이 가정인 B 중사는 배우자의 직장 위치 때문에 불가피하게 최근 서울 외곽 지역에 34평형(전용 84㎡) 아파트 전세를 구했다. B 중사는 “6억5000만원 짜리 물건을 겨우 구하고서도, 3억5000만원이나 되는 전세금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은행 대출 여력이 부족해 모자라는 돈은 차용증을 쓰고 아버지 퇴직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출 부담이 크지만, 부대 밖 민간 아파트를 선호하는 배경에는 자녀 교육 문제도 있다. 수원의 한 신도시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C 소령은 “말이 수도권이지, 군부대가 위치한 지역은 아무래도 아이들이 학원 다니기조차 어렵다”며 “그래서 관사에선 학원을 오가는 버스를 단체로 대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리저리 부대를 옮겨 다니는 군인 특성상 아이들에게 못 해주는 게 많다”며 “내 몸이 피곤하더라도 남들 하는 정도만이라도 해주자는 마음이 컸다”고 속내를 밝혔다.

MZ세대 군인들은 군 관사 생활에서 오는 위계 문화 등 불편함을 토로한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충북 괴산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열린 '학사사관 66기 및 간부사관 42기 통합임관식'에서 신임장교들이 모자를 하늘로 던지며 임관을 자축하는 모습. [사진 육군]

MZ세대 군인들은 군 관사 생활에서 오는 위계 문화 등 불편함을 토로한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충북 괴산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열린 '학사사관 66기 및 간부사관 42기 통합임관식'에서 신임장교들이 모자를 하늘로 던지며 임관을 자축하는 모습. [사진 육군]

관사 생활에서 오는 간섭이 싫은 MZ 세대 군인들의 불만도 크다. 군 관사에 사는 B 대위는 “나보다 배우자가 불편한 게 더 많다”며 “예전처럼 남편의 계급이 배우자의 서열이 되는 현상은 많이 줄긴 했어도 눈치를 안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거주 여건이 좋은 민간 아파트들을 군이 확보해 빌려주기도 하지만, 몇 채 되지 않다 보니 경쟁이 치열하다”며 “근속연수나 부양가족 수를 따지다 보면 젊은 장교나 부사관이 입주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고 토로했다.

이런 군인들의 사정과 관련해 국방부는 “전세 시세 상승을 고려해 대부 지원금을 올리기 위해 예산을 요청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 같은 전세가 상승 속도라면 갭을 좁히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군 안팎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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