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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1등 국가도 점령한 델타 변이…"불과 며칠새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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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4일(현지시간) 예루살렘의 한 마트. 마스크를 안 쓴 사람들에게 직원들이 "마스크를 써 달라"고 요청한다. 실외에선 마스크를 벗어도 되지만, 언제라도 쓰기 위해 턱에 걸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스라엘 교민 유현주(41)씨가 전한 이스라엘 현지 모습이다.

"신규 확진자의 90% 델타 변이 감염" #WP "백신 VS 변이 대결로 다시 주목" #신규 확진 42% 백신 2차 접종 분석도 #하루 확진, 한 자릿수서 세 자릿수로 #중증 환자, 사망자 감소엔 효과 확실

유씨는 "잠시 자유를 맛봤다가 불과 며칠 사이에 분위기가 달라졌다"면서 “나 역시 백신을 두 차례 모두 맞았지만, 실내에서 다시 마스크를 꼭 쓴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25일부터 다시 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 지침을 내렸다. 해제 11일 만에 전격 부활이었다.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가 4일 각료회의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가 4일 각료회의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코로나19 백신 접종 선두국 이스라엘을 이처럼 다시 움츠리게 만든 건 전파력이 강력한 델타(인도발) 변이 바이러스다. 전 세계에서 빠르게 확산 중인 델타 변이는 이스라엘도 강타했다.

최근 이스라엘 신규 확진자의 90% 이상이 델타 변이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현지 매체 하레츠 등이 4일 보건 당국 통계를 인용해 보도했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 이스라엘의 2일 하루 확진자는 319명인데, 이중 287명 정도가 델타 변이 감염자란 계산이 나온다.

이스라엘은 인구의 약 60%가 백신 2차 접종을 완료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은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에 델타 변이가 덮쳤을 때 확산세와 백신 효과 등에 대한 일종의 '힌트'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달 25일 이스라엘의 쇼핑몰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 [신화통신=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이스라엘의 쇼핑몰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 [신화통신=연합뉴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스라엘은 인구 대다수가 백신 접종을 한 상황에서 새롭게 코로나 변이와 싸우는 첫 번째 국가로서 다시 주목받게 됐다"고 평했다. '초고속 백신 접종국' 이스라엘이 이제 '백신 대 변이' 대결 결과를 예측해 볼 수 있는 나라가 됐다는 의미다.

이스라엘에서 첫 델타 변이 감염 사례 7건이 보고된 건 지난 4월 16일. 이후에도 높은 백신 접종률, 마스크 착용 등의 효과로 델타 변이가 비교적 잘 통제되는 듯했다.

하지만 2주 전 신규 확진자 중 델타 변이 감염 비율이 60%로 집계되더니 이 수치가 최근 90%까지 급증한 것이다. 델타 변이 확산의 원인으로는 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 해제, 느슨해진 해외 입국자 검역, 백신 미접종자가 많은 학교발 집단감염 등이 꼽힌다.

이스라엘은 백신의 효과로 하루 확진자가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었다. 하지만 지난달 15일 '실내 마스크 해방'을 선언한 지 일주일 뒤인 지난달 21일 하루 확진자가 세 자릿수로 올랐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우려되는 점은 신규 감염자의 상당수가 백신을 완전히 맞았다는 점이다. 지난 1일 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최근 2주간 신규 확진자 1900여 명 가운데 800여 명(약 42%)은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쳤다.

이스라엘의 코로나 백신 대책 전문가 랜 디 발리커는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백신은 매우 효과적이지만 방탄 효과(bulletproof effective)가 있는 건 아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다만 이들 신규 확진자 중 절반 가량은 12~15세 550여 명을 포함한 학생이었다. 백신 접종률이 낮은 연령대에서 많은 확진자가 나왔다는 의미다.

이스라엘 히브리대는 3일 보고서를 통해 당국이 추가 방역 조치를 내리지 않을 경우 하루 확진자가 2주 안에 1000명대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보고서는 또 백신이 델타 변이 예방에 60~80%정도의 효과가 있다고 추산했다. 이스라엘 국민 대부분은 화이자 백신을 맞았다.

교민 유씨는 "아무래도 실내 마스크 착용 규제를 한 번 풀었다가 다시 해서 그런지 방역 의식이 느슨해져 안 쓰는 사람이 이전보다는 많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4일 예루살렘의 한 마트에서 마스크를 안 쓴 시민. [이스라엘 교민 제공]

4일 예루살렘의 한 마트에서 마스크를 안 쓴 시민. [이스라엘 교민 제공]

이에 이스라엘 당국은 4일 추가 방역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는 4일 각료회의에서 "실내 마스크 착용 등에 국민이 잘 협조하지 않고, 감염률이 계속 악화하면 '그린 패스(일종의 면역 증명서)'를 통한 제한 조치 복원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 미접종자의 공공장소 출입을 다시 제한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백신이 중증 환자와 사망자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5월 18일부터 이스라엘에서는 하루 사망자가 '0'을 기록한 날이 많았다.

예루살렘 하다사대 메디컬센터의 요람 웨이스 소장은 "델타 변이 확진자 증가에도 코로나19 입원 병동은 비어있는 상태"라면서 "이전 대유행과 양상이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에서 한 소년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이스라엘에서 한 소년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벤구리온대 공중보건연구소의 나다브 다비도비치 교수도 "백신의 효과가 100%가 아닌 만큼 접종자 중에서도 감염자가 나올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백신은 중증으로 악화하는 것을 방지한다. 유증상 환자 대부분이 미접종자"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 당국은 이전과 같은 수준의 봉쇄는 하지 않을 방침이다. 마스크 착용과 같은 기본 방역을 유지하면서 어린이·청소년 등의 백신 접종률을 끌어 올리고, 해외 유입 차단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베네트 총리는 "일상 생활과 경제에 타격을 최소화하면서 이스라엘 시민을 최대한 보호할 것"이라며 "제한 대신 마스크, 봉쇄 대신 백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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