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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전범 영서 역이용 "말썽"|소 정보 수집 위해 간첩으로 고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2차대전이 끝난 직후인 45년10월 영국의 첩보기관 MI6은 전시 동맹국이었던 소련이 가장 우선적인 적국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2년 뒤 MI6은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유대인 대량학살에 관련된 나치전범자들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이 임무를 최초로 수행한 인물은 발트해 3국을 무대로 첩보활동을 벌였던 매키빈이었다. 그는 전쟁중 독일군과 함께 싸웠던 라트비아인 3명을 선발했고, 이들은 곧 런던으로 가 전SS(나치친위대) 대령 알폰스 르반과 합류했다.
이런 식으로 선발된 라트비아인들은 49년부터 55년 사이 소련해안에 잠입, 스파이망을 구축하려는 MI6의 공작에 가담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나치 행동대원 출신으로 공작이 끝난 뒤 노동자로 위장해 런던에 정착했다.
이밖에도 47년에 영국에 도착한 8천명의 우크라이나인들도 폴란드에서 잔악한 행위를 저지른 SS소속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전쟁이 끝나자 모든 신분증을 없애고 폴란드인 행세를 한 점에서 공통적이었다.
영국외무부는 처음에는 이들에 대해 흥미를 보이지 않았으나 47년2월 정책이 바뀌면서 이들을 「정치적 난민」으로 규정하고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정책변화의 배경에 우크라이나에서 비밀공작을 수행하려는 MI6으로부터의 압력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이 같은 사정은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리용의 도살자」라는 별명이 붙은 크라우스바르비를 미국 정보기관은 47년4월 첩보원으로 고용했다.
바르비는 후에 영국 정보기관에서도 같은 제의가 왔었다고 진술했는데, 영국정부는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이런 배후관련문제 때문에 현재 영국정부와 의회가 골치를 앓고있다.
지난 7월 일단의 법조인들은 대량학살에 관련된 소련출신 2명이 영국으로 귀화했고, 이들 이외에 75건이 더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법조인들은 이들 범죄자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은 영국의 법정신을 모독하는 일이라며 조사를 요구했다.
한편으로는 영국의 법체제가 외국인이 외국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기소할 수 없게 돼있고, 연합군도 잔인한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 나치전범들을 처벌하는 것은 무리라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살인범에 대한 기소는 시간에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전고위검찰관계자인 히세링턴은 『나치전범자들에 대해 아무런 법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영국은 전쟁범죄자들의 은신처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영국당국은 전범문제에 대해 다른 국가와는 달리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희생자가 영국인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 예로 적어도 80명의 영국군 포로를 사살하라고 명령한 전SS소속 강군 빌헬름 몽케가 함부르크에서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영국정부는 몽케가 현재 서독의 사법권 하에 살고있으므로 서독 자신의 문제일 뿐이라면서 영국이 직접 나서 전범을 처단해야 한다는 여론을 애써 회피하고 있다.

<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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