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 정계에 「블랙파워」 돌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7일 미국 버지니아주·뉴저지주·뉴욕시 등지에서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흑인후보들이 승리를 거두어 미정계에「흑인돌풍」을 몰고왔다.
백인이 유권자 구성에서 압도적으로 많고 전통적으로 인종차별이 심했던 버지니아주에서 사상 첫 흑인주지사를 낸 것이다.
미국최대도시인 뉴욕시를 비롯, 시애틀·디트로이트·클리블랜드·뉴헤이븐의 시장선거에서도 잇따라 흑인후보들이 당선된 적은 미국사회가 한 분기점에 도달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같은 결과는 전반적으로 미국 내에서 흑인들이 점점 정치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가운데 특히 유권자들의 투표성향이 인물보다는 정견에 비중을 두고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지적된다.
특히 버지니아주지사 선거결과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버지니아주는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도를 찬성한 남군의 근거지로 전통적으로 흑백차별이 심한데다 지금도 전 국민의 절대다수인 80%를 백인이차지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쟁점이 된 낙태허용여부를 둘러싸고 노예의 손자인 와일더 후보는 낙태를 허용하고있는 현행법을 개정하여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화당의 마셜 클먼후보를 맹공, 승리를 거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와일더 후보의 승리는 낙태자유운동의 승리로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번 지방선거에서 미국 유권자들이 특정인물의 출신이나 배경에 구애됨이 없이 정견에 따라 후보자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미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흑백문제해결에도 밝은 전망을 던져주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흑백차별의 온상인 버지니아주에서 미국의 사상 첫「검은 지사」가된 와일더는 온건한 성향이지만 집념으로 뭉친 입지전적 인물.
그는 버지니아에 있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 졸업한 후 입대, 한국전에 참전해 무공을 세우기도 했다. 흑인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워싱턴의 헌터대학에 입학, 변호사 자격을 따냈다.
그 후 고향에서 형사사건 전담변호사로 개업한 그는 명성을 쌓기 시작, 69년 버지니아주 상원의원에 당선된데 이어 또 69년에는 부지사에 출마해 당당히 당선됐었다.
은발에 부드러운 말솜씨를 구사하는 그는 흑인민권지도자 킹목사를 추념하기 위한 주 공휴일제 제정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백인 연방검사출신인 루돌프 줄리아니 (45)를 근소한 표차로 누르고 당선된 딩킨스 뉴욕시장(62)은 30년 전 정계에 입문, 뉴욕주 의원·시 서기 등을 거쳐 최근3년 간 맨해턴구청장을 맡아오면서「인종간의 화합」을 공약으로 내세워 흑인들의 몰표와 인종문제악화를 원치않는 백인이 탈표의 지지를 받았다.
딩킨스는 맨해턴구청장 재임시 관내에서 발생한 백인의 대흑인 폭력사건은 물론 흑인의 대백인 폭력에 대해서도 똑같이 강경한 자세를 견지, 인종문제에 있어 균형감각이 있다는 평을 받았다.
뉴저지주 트렌턴에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나 뉴욕 할렘가에서 성장한 딩킨스는 미해병복무를 마친 뒤 흑인대학인 하워드대에서 수학을 전공했으며, 뉴욕 부르클린법대에서 법률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그는 또 유세기간 중 아내를 동반, 선거자금을 모금할 것을 권유한 측근의 조언을 과감히 거부하는 등「물들지 않은」정치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안희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