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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서기'에 길들여졌다, 욕망의 샤넬이 불편한 이유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07.03 08:00

업데이트 2021.07.0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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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이 가격을 인상하기 직적인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샤넬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매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샤넬이 가격을 인상하기 직적인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샤넬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매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백화점 샤넬 매장 앞에 사람들이 긴 줄을 선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밤새 돗자리와 텐트를 치고 기다리다 매장문이 열리자마자 달려 들어가는 ‘오픈 런’도 익숙한 단어가 됐다. 샤넬은 지난 1일 가격을 큰 폭으로 올려 인기 가방이 하룻밤 새 942만원에서 1049만원(‘클래식 플랩백 라지’)이 됐다. 그래도 여전히 매장 앞엔 200~300명의 줄이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은 말 그대로 명품의 힘이 뭔지 확실히 보여준다. 코로나19라는 보건·사회·경제 위기 속에서도 지난해 한국 사업부 매출은 26% 성장했고 영업이익은 34% 증가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사람들이 많이 사기 때문이다. 샤넬로선 ‘사람들이 기다려서라도 사겠다는데 우리더러 어쩌란 거냐’고 할 만하다. 가격이란 게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오르는 게 당연하니 ‘원자잿값, 인건비 대비 그만큼 올린 게 정당한지’와는 별개로 샤넬의 인기(수요)를 감안하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샤넬 '클래식 플랩백' 모습. 사진 샤넬 홈페이지

샤넬 '클래식 플랩백' 모습. 사진 샤넬 홈페이지

잠시 절묘함을 넘어 신묘하기까지 한 샤넬의 ‘심리 마케팅’을 들여다보자.
살 수 있는 수량이 딱 정해진 ‘한정판(리미티드 에디션)’은 사람들의 소유욕을 부추긴다. 샤넬은 사실상 전 상품, 브랜드 자체가 한정판이다. 한정판을 쟁취하기 위한 역경조차 ‘모험기’로 만들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원하는 샤넬 제품을 사기 위해 하루 연차를 내고 새벽부터 줄을 서는 것을 어느 정도 그래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사진과 함께 ‘오늘도 사람이 많네요’ ‘남편까지 (줄서기)동원해 드디어 겟(get)!’ 같은 글들이 많다. 어렵게 산 샤넬 포장 상자를 여는 순간을 담은 ‘언박싱’ 영상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고생했다, 축하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구매한 샤넬 가방을 포장 상자에서 꺼내 소개하는 과정이 담긴 영상화면. 사진 유튜브 캡처.

구매한 샤넬 가방을 포장 상자에서 꺼내 소개하는 과정이 담긴 영상화면. 사진 유튜브 캡처.

이런 과정들은 일종의 ‘샤넬 문화’가 돼 버렸고, 동경하는 인기 아이돌이나 연예인처럼 우상화의 대상이 됐다. 단순히 부(富)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노린 다른 명품들과 차별화하는 대목이다. 일반 브랜드들이 소비자 눈치를 보는 가격 인상조차 ‘곧 오를 테니 지금이 가장 싸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마케팅·홍보의 수단이 됐다. 샤넬은 이제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까지 나온다.

브랜드는 기본적으로 고객의 사랑과 신뢰를 먹고 산다. 그런 면에서 샤넬이 한국 고객들이 주는 사랑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단 줄서기. 샤넬은 제품 구매는 물론 수선(AS)을 받으려고 해도 매장 앞에 줄을 서서 대기번호를 받아야 한다. 특히 루이비통과 에르메스 등 온라인 판매를 실시하는 다른 명품 브랜드와 달리 샤넬은 가방류를 오직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판매하고 있다. 온라인 채널을 막았다면 ‘인간적으로’ 비가 오나 덥고 춥거나 장시간 긴 줄을 서는 소비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편안한 쇼핑 환경을 제공할 방안을 고민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샤넬에는 물건을 사서 되파는 ‘리셀러(재판매자)’를 추려내 제품을 팔지않는 ‘부티크경험보호정책’ 정도만 있다.

사람들이 백화점 샤넬매장 앞에 줄을 서 있는 모습. 뉴스1

사람들이 백화점 샤넬매장 앞에 줄을 서 있는 모습. 뉴스1

다음은 코로나19 속 거리두기 방역 문제. 샤넬 매장에는 점포별로 적게는 30명, 많게는 50명 가까운 직원들이 있다. 매장 내부는 방역과 ‘고객 경험’을 위해 인원수를 제한하고 있지만, 벽 너머 장사진을 이룬 상황엔 관심이 없다. 지나치게 좁은 간격과 마스크 착용 문제 등으로 사람들끼리 시비가 붙고 안전사고와 방역 문제로 경찰까지 배치됐지만 샤넬에서 비용이나 인력을 지원하는 건 없다. 오히려 백화점 측에서 사고가 생기지 않을까,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 영업시간 전후로 머물 공간과 간식을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수십 년 넘게 샤넬 제품들을 사용해 온 A씨는 “최근 2~3년 사이 매장을 자주 다녀봤지만 5~10분 기다리면 됐지 한 번도 이렇게 긴 줄을 본 적이 없다”며 “쾌적한 쇼핑을 하고 싶어 최근 무착륙 관광비행으로 샤넬 면세점을 이용해 허용되는 한도 내에서 물건을 샀다”고 말했다.

A씨의 말처럼 관건은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해외여행이 재개됐을 때다. 한국에 불고 있는 샤넬 열풍은 온라인 구매와 해외 매장 구매가 모두 막힌 상황에서 거세진 현상이다. 이동이 자유로워질 경우 환율과 경비 등을 따져 한국보다 싼 해외에서 명품을 사는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이후에도 샤넬의 브랜드 경쟁력은 여전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한창일 무렵 겪었던 수차례의 가격 인상과 줄서기 현상이 훗날 샤넬을 떠올릴 때 어떤 이미지로 남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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