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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시간쫓겨 낸 ‘소득 잣대’…재난지원금 ‘욕받이’ 된 건보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07.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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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마포지사. 뉴스1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마포지사. 뉴스1

신성식 전문기자의 촉: 착한 건보, 나쁜 건보 

건강보험과 한국인은 애증의 관계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수 차례 칭찬할 정도로 전국민의 건강에 보탬이 되고 있다. 출근길에 몸살 기운이 있으면 눈에 띄는 의원 아무 곳이나 들러도 30분 내에 전문의 진료를 받고 약을 탄다. 1만원도 안 든다.

어르신들은 안마 받듯 동네의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는다. 종합병원도 어렵지 않게 가고 MRI·CT를 찍는다. 암 같은 중병에 걸려도 환자 부담(비보험 진료비 포함)이 20% 채 안 된다. 건강보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보험료는 소득의 6.9%에 불과하다. 선진국의 절반도 안 된다. 동남아·아프리카에 제도를 수출한다.

지난해 1월 발발한 코로니19 환자의 사망을 최소화하고, 중증으로 번지지 않게 적기에 치료하는 것도 건강보험을 바탕으로 한 단단한 의료체계 덕분이다.

이렇게 착한 건보가 보험료 부과방식 얘기만 나오면 뭇매를 맞는다. '나쁜 건보'로 손가락질 당하는 대표적 사례 네가지.

① 은퇴자·노인은 괴롭다

현금 소득이라고는 쥐꼬리 국민연금 밖에 없는데, 건보료가 20만원 훌쩍 넘는다. 아파트 건보료 때문이다. 대도시에 아파트 한 채 있으면 20만원은 예사다. 그동안 자녀 건보증에 피부양자로 올려서 무임승차 해왔는데, 이제 그것도 불가능하게 됐다. 몇 년 새 집값이 다락같이 오르면서 '피부양자 탈락' 통보를 받아서다. 집값을 올려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② 이웃은 나보다 덜 낸다

같은 단지 아파트에 사는 직장인 친구는 월급에만 보험료를 낸다. 자영업자 B는 사업소득에다, 아파트에, 차에 보험료를 낸다. B는 소득을 숨긴 적이 없다. 친구의 집이 더 크고, 차가 더 고급인데….

③ 저 친구는 왜 저리 적게 낼까

동창회에서 만난 개인사업 하는 친구는 돈을 많이 버는 것 같은데, 보험료가 박봉의 월급쟁이인 C보다 적다. 이날 따라 친구의 비싼 외국산 승용차가 더 빛나보였다. 건보 당국이 친구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는지….

④ 왜 이리 많이 매기나

직장인 D는 월급에만 보험료를 내는 게 아니다. 임대소득이 있다고 거기에다 또 보험료를 매긴다. 직장인은 월급에만 보험료를 매긴다고 들었는데, D처럼 근로소득 외 다른 소득이 있으면 여기에도 매긴다. 보험료 많이 낸다고 정부가 대우해 준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은데….

이번에 건보가 '너무 나쁜 건보'가 될 처지에 놓였다. 정부가 5차 재난지원금을 소득하위 80%로 자를 때 건보료를 잣대로 쓰기로 하면서다. 벌써부터 "지역가입자가 불리하다" "소상공인 대거 누락 가능성" "2019년 소득으로 뭘 하겠다는 거냐"는 등의 지적이 잇따른다. 그도 그럴 것이 1차 재난지원금 때 소득 하위 70% 선정 기준으로 건보료를 활용하려다 반발에 부닥쳤고, 전국민 지원으로 선회한 적이 있다.

건보가 동네북이 되면 불신 덩어리로 전락한다. 부동산이나 자동차는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보완장치로 활용하는 것이다. 소득 파악의 책임은 건보에 있는 게 아니라 나라의 책임이거늘, 건보가 욕받이 노릇을 한다. 건보료는 이미 난임시술비 지원 등 18개 복지사업 대상자 선정 잣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건은 차원이 다르다.

추석 전 지급을 목표로 서둘면서 비교적 간편하게 활용할 잣대로 건보료를 지목한 것 같다.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 70% 이하 노인에게 지급한다. 대상자를 선별할 때 암호문에 가깝게 복잡하게 살림살이를 따진다. 재난지원금에 그런 잣대를 쓰기에는 너무 번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건보료를 활용하는 건 좋다. 그러나 명심할 게 있다. 건보는 특정 정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말 많은 선심성 재난지원금이 건보의 신뢰를 흔들 권리가 없다. 정부는 "직장인의 '재산 컷-오프'를 도입하거나 지역가입자의 지난해 종합소득 감소분 이의신청을 받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것만으로 '나쁜 건보' 손가락질을 멈추게 할 것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더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내년 7월 2단계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거다. 재산 건보료의 비중을 확 낮춰야 한다. '사는 집 한 채'는 아예 부과대상에서 빼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사는 집 한 채는 주거권이다. 지역가입자 최저보험료(월 1만4380원) 대상자 20%도 축소해야 한다. 과세 당국이 웬만한 과세 자료는 건보공단에 넘겨야 한다. 그럴 생각이 없으면 이참에 국세청이 건보료 징수 업무를 가져가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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