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주최 예술의 전당서 독주회 갖는 피아니스트 서혜경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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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 카네기홀 초청 세계정상급 3대 피아니스트, 부조니국제콩쿠르 대상, 뮌헨콩쿠르 2위, 링컨센터상으로도 불리는 윌리엄 퍼랙상 수상, 필라델피아 오키스트라·모스크바필 등과 협연…. 일일이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눈부신 경력에다 시원시원하고도 열정적인 연주로 각광받아온 피아니스트 서혜경씨가 15일 오후7시30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중앙왈보주최 피아노독주회를위해 서울에 왔다.
엠마누엘 엑스, 요요마, 미도리, 짐머만, 뮬로바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활약하는 음악가 18인」으로 선정돼 지난달 14일부터 일본 산토리홀 개관 3주년기념 특별연주회와 그 실황을 CD로 제작하는 특별기획에 참가도중 일시 귀국한 것.
『이번 일본에서 제 연주가 전보다 한결 차분하고 아름다워졌다고 격찬받았습니다. 제 스스로도 심경의 변화와 함께 연주 스타일이 크게 변한걸 느낍니다.』
「분출하는 용암」으로 곧잘 비유되는 그의 독특한 연주를 딴판으로 뒤바꿔놓은 요인은 무엇일까. 『이제까지는 피아노하고만 백년해로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랑과 미움이 엇갈린 피아노와의 연애 25년에 한계를 느껴요』라며 『제 이름에 붙어 다니는 온갖 수식어와 관계없이 그저 예술가로서의 서혜경을 이해하고 격려해줄 수 있는 반려자가 있었으면 좋을 것』이라는 말로 그 속사정을 짐작케 한다. 또 최근 어느 TV드라마에서 유망한 피아니스트인 아내를 그저 평범한 주부로 안주시키려는 남자를 보니 정말 안타깝고도 어이없더라고 덧붙이 기도.
지난 3월의 서른번째 생일에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꼭 먹어야겠다며 난생 처음 연주일정까지 취소하고 미국에서 날아왔던 그는 『이제까지 남들보다 두 세 곱 이상 고생했으니 서른살 생일잔치가 아닌 회갑잔치를 해달라』고 투정부렸다는 말로 그간의 남모를 갈등과 외로움을 드러냈다. 자신의 이름 석자에 빛이 더해질수록 책임감과 유명세도 그만큼 더 혹독해져 이젠 도무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얘기다.
『13세 때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이래 미국 매네스 음악학교와 쥴리어드음대를 졸업하고 막연히 「세계정상」만을 향해 치닫다보니 친한 친구하나 사귀지 못하고 스스로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보지도 못한 채 살아왔어요. 서른살 고비를 넘기면서야 그동안 유보당한 사춘기를 앓고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지금까지는 동양인이 서양식의 화려하고 박력 있는 연주를 해온 셈이라면 앞으로는 동양인의 그윽하고 깊이 있는 정서가 서양의 힘과 어우러진 연주를 하고 싶다면서 『연주에만 매달리지 않고 내적 성장을 위해 좀더 노력할 생각』이라고 밝힌다.
이번 독주회가 끝나면 곧 일본에 가 일본국제콩쿠르를 심사한 뒤 히로시마에서 연주회를 갖는 등 오는 91년까지 연주 및 심사일정이 빽빽이 잡혀있지만, 그보다는 레퍼터리를 다양하게 늘리고 한국 작곡가의 작품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후배 양성에도 애정을 쏟겠다는 이야기다.
서울 연주회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소나타 F장조, 작품 332』, 베토벤의 『소나타 제23번, 열정』, 무소르크스키의 『전람회의 그림』등을 연주할 그는 『전에 없이 부드럽고 온화하면서 내면적 깊이가 있는 음악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며 웃는다.

<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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