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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에 의한 평화' 이라크전 설계했던 '네오콘' 럼즈펠드 별세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사망한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 국방장관은 최연소와 최고령 두 번의 재임 기록을 세웠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사망한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 국방장관은 최연소와 최고령 두 번의 재임 기록을 세웠다.[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을 이끌었던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이 별세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향년 88세.
럼즈펠드의 가족은 이날 그가 뉴멕시코주 타오스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사인은 다발성 골수종이다.
백악관 비서실장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대사, 일리노이주 하원의원 등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국방부 장관을 두 번 한 것으로 잘 알려졌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 시절인 1975년부터 2년간, 조지 W 부시 정권 때인 2001년부터 5년간이다. 처음엔 43세로 최연소, 나중엔 74세로 최고령 국방수장이 됐다.
미소 냉전과 테러와의 전쟁 등 가장 위태로운 시기의 국방장관이었다.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우는 미국 강성 매파의 대표 인물이기도 하다.
CNN은 그가 남긴 워싱턴의 유산은 결국 '이라크 전쟁'으로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전했다. 럼즈펠드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설계한 장본인으로 알려졌다.
앞서 일어난 9.11 테러와 관련해 이라크가 대량파괴 무기(WMD)를 숨기고 있다는 이유였다. 사실 이라크는 알카에다와 큰 관련이 없었다. 따라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럼즈펠드가 무리해서 이라크 공격을 주장했다는 증언이 잇따라 나왔다. 결국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체포해 처형까지 했지만 대량파괴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 2004년 5월 13일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이 이라크전에 참전하는 병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AFP=연합뉴스]

지난 2004년 5월 13일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이 이라크전에 참전하는 병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AFP=연합뉴스]

당시 그는 확실한 증거를 묻는 기자들에게 "우리는 알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Known Knowns)도 있지만,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Known Unknowns)도 있다. 그러면서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Unknown Unknowns)도 있다"고 답했다.
증거를 알기 힘들다는 점을 돌려 말한 건데, 이를 두고 CNN은 그의 가장 악명높은 인용구가 됐다고 전했다.
이후 이라크 전쟁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전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민심이 등을 돌렸고, 2006년 중간선거에 참패해 민주당이 상하원 다수석을 모두 가져갔다. 럼즈펠드도 그해 말 사임했다. 결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하는 길을 터준 셈이라는 평가다.
럼즈펠드는 두 번째 장관 재직 때인 2003년과 2005년 한국을 찾았다. 1974년에 백악관 비서실장 자격으로 포드 대통령을 수행해 방한하기도 했다.
북한 문제에서도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퇴임 후 쓴 회고록에선 외교적·경제적 대북 압박을 통해 북한 내 군부가 알아서 김정일 체제를 무너뜨리는 시나리오를 짜기도 했다고 밝혔다.
살아 생전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은 "두 번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상 최고의 국방부 장관"이라고 치켜세웠던 반면,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행정부에서 만난 가장 무례한 사람"이라고 혹평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럼즈펠드 전 장관은 지적이고 진실하며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주저하지 않았고 책임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며 "모범적인 공무원이자 매우 좋은 사람이던 그를 애도한다"고 덧붙였다.

최연소·최고령으로 2번 국방장관 지내 #이라크전 일으켰지만 "대량파괴무기" 못 찾아 #"최고의 장관""무례한 사람" 엇갈리는 평가 #부시 "모범적인 공무원이자 좋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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