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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는 식품 행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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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식품행정이 비틀거리고 있다. 식품에 대한 국내외 정보가 부재상태인데다 법령이 미비 돼었고 검사와 단속에도 구멍이 뚫려있다.
문제가 생기면 업자편에서 변명에 급급하고 뒤늦게 대책을 세우느라 뒷북을 친다.
최근 전국을 분노와 충격으로 들끓게 하고 있는 공업용 우지파동은 이 같은 식품행정이 어우러져 빚어낸 난맥상의 표본.
보사부의 행정이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국민들의 건강은 계속 비틀거릴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보 부재=보사부측은 이번 우지 파동의 원인이 된 미국산 우지가 14등급으로 분류돼 1등급만 식용이고 2등급이하는 비식용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비양심적인 업자들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분개하고 있다.
즉 외국의 식품정보는 전혀 없이 업자들이 수입신고서에「식용」이라고 표시한 것만 믿고 서류심사로 검역소를 통과토록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보부재에 의한 소동은 올 들어서도 수입쇠고기의 항생제·성장촉진제투여, 자몽에서의 알라 (다미노자이드) 농약검출, 수입옥수수의 아플라톡신 오염등 수 차례 되풀이됐다.
보사부는 소비자단체의 문제제기에 따라 뒤 늦게야 수거검사를 실시해 해명에 급급했고 다미노자이드와 아플라톡신잔류허용기준을 새로 만들기도 했다.
보사부의 외국 정보에 대한무관심은 의약품 분야에도 나타나 UN과 WHO가 판매금지한 의약품이 국내에 유통되고 있다는 소비자단체의 항의에 따라 시정조치를 취했었다.
◇법령 미비=식품에 관한 한「헌법」이라 할 수 있는 식품공전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정비돼 있지 않아 이번 우지파동에서도 논란이 되고있다.
보사부는 그동안 식품공전에서 식품원료에 대한 규제를 하지 않다가 올해 1월1일부터 「원료 등의 구비요건」을 신설, 이 조항이 이번 우지파동에서 사법처리의 근거가 됐다.
그러나 식품 원료의 기준이▲일반인들의 전래적인 식생활관습이나 사회통념상 식용으로 하는 것 ▲상용식품으로서의 안전성이 입증된 것 ▲기타 보사부장관이 식품으로 적당하다고 인정하는 것 등으로 규정하고 명확한 규격기준을 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에 적발된 5개 업체들은 우지 원료의 식용·비식용 구분이 미국내에 통용되는 것일 뿐 비식용도 정제과정을 거치면 우리 식품기준에 맞게되므로 식품공전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있다.
또 우리나라는 물론 호주·뉴질랜드 등도 우지원료에 식용·비식용을 구분하지 않고 있어 앞으로 식품원료의 기준을 적용하는데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이 밖에도 식품공정상의 식품원료기준은 벌써 11개월째 시행되고 있으나 이를 위반했을 경우에 대한 행정처분을 취할 수 있는 식품위생법시행규칙(보사부고시)이 아직 개정되지 않아 이번에 적발된 5개 업체에 대해서도 사법처리 이외엔 행정처분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해식품 단속=전국의 1만8천4백여 식품제조업체에서 생산해 내는 식품 품목은 20여만종.
그러나 식품위생관계 인원은 보사부와 시·도를 포함해 1천1백여명 뿐이며 이 가운데 상설감시요원은 1백 50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특히 이들 감시요원들은 식품뿐만 아니라 위생·접객업소등 모두 49만곳을 담당해야하므로 인력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며 상설감시요원은 임시직이어서 사기가 떨어지고 능동적인 감시업무가 어렵게 돼있다.
보사부는 단속인력을 현재보다 최소 두 배 이상 늘리도록 요청하고 있으나 예산문제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보사부는 이 같은 사정으로 올해부터라면·두부·콩나물 등 30개 품목을 국민다소비 식품으로 지정, 월 1회씩 수거검사를 실시한다고 밝혔으나 인원과 장비의 부족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부족한 검사시설=국내의 식품 검사시설로 최고의 권위를 가져야 할 국립보건원의 검사장비 4백 57대 중 16%가 10년 이상 사용된 노후장비이며, 9·6%는 관리상태 불량으로 감사결과 지적됐다.
특히 각종 검사를 위해 필수적으로 확보해야할 장비 1백99대를 예산사정으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입식품을 비롯한 폭주하는 검사 의뢰를 제때 소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할 경우 검사시약이 없어 외국에서 구입해 오느라 애를 먹고있다.
시·도별 보건환경연구소는 사정이 더욱 나빠 검사장비의 노후, 최신기재의 미확보, 전문검사 인력의 부족 등으로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사정은 수입식품을 검사하는 전국 13개 검역소도 비슷해 지난해 수입식품 4만 5천여건 중 4·9%만이 이화학적 검사를 거쳐 통관 됐었다.
결국 국민들이 식품에 대해 안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식품정보를 신속하게 입수해 법령을 정비하고 효율적인 식품 감시와 정밀검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한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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