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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화장실도 따로 쓴다? 깔끔 떠는 '제주 흑돼지' 정체

중앙일보

입력 2021.06.26 05:00

업데이트 2021.06.26 09:25

‘화장실+돼지우리’서 인분 먹고 자라 ‘제주 똥돼지’

제주도 돼지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흔히들 ‘똥돼지’라고 불렀다. 각 가정에서 키우는 돼지가 ‘돗통시’(돼지가 키워지는 화장실)에서 인분을 받아 먹고 자라서다.

[e즐펀한 토크] 최충일의 돌하르방 톡
코로나에도 날개 돋힌 '제주 흑돼지'

돗통시는 2~3평 정도의 현무암 울타리를 쌓은 돼지우리 한켠에 사람이 큰일을 볼 수 있게 발을 지지하는 넓적한 돌 두 개를 얻은 구조로 되어있다. 돌 사이 밑으로 인분이 떨어지면 돼지가 이를 받아 먹고 자랐다.

비록 인분을 뒤집어 쓴 채 키워졌지만,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은 제주인의 소울푸드였다. 특히 ‘관혼상제(冠婚喪祭)’ 때는 돼지고기가 상에 빠지지 않고 올랐다.

제주의 전통 화장실이나 돼지우리인 돗통시에서 키워지는 흑돼지들이 먹이를 먹고있다. 중앙포토

제주의 전통 화장실이나 돼지우리인 돗통시에서 키워지는 흑돼지들이 먹이를 먹고있다. 중앙포토

잔치 때마다 마을사람 모두 나누던 ‘소울푸드’

과거 제주 사람들은 마을에 큰 일이 생기면 집안의 큰어른이나 마을의 음식을 총괄했던 ‘도감(都監)’이 직접 돼지를 잡고 요리했다. 지금은 불법인 ‘밀도축’의 행태가 당시에는 흔한 일상 풍경이었다.

잡은 돼지는 피를 빼기 위해 집 앞 마당이나 마을 거리 한켠의 나무 등에 거꾸로 매달았다. 피를 뺀 돼지는 내장과 살을 따로 분리해 마을 사람 모두가 나눠 먹었다.

이중 태어나기 전의 어린돼지를 물회로 만들어 먹는 ‘새끼회’나 ‘돼지생간’ 등은 돼지 잡는 날만 맛보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모아둔 피는 굳혀 선지로 만든 후 순대 등의 재료로 썼다.

제주 중산간지역인 무릉2리 제주 전통 양식의 화장실 터. 둥근모양의 검은색 현무암 돌담이 돼지를 기르던 돗통시다. 중앙포토

제주 중산간지역인 무릉2리 제주 전통 양식의 화장실 터. 둥근모양의 검은색 현무암 돌담이 돼지를 기르던 돗통시다. 중앙포토

돔베고기(수육)부터 '현대 웰빙식' 몸국까지

돼지고기는 제주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뿌리깊은 음식 문화다. 가장 많이 나오는 살코기는 삶아 ‘돔베고기’(수육)를 해 소금·김치 등을 곁들여 먹었다.

남은 뼈와 내장은 곰국을 끓여 마을사람 모두가 함께 나눴다. 돼지의 경추뼈, 등갈비뼈 등을 우려낸 곰국을 그냥 내면 제주전통의 곰탕 ‘접짝뼈국’, 국에 면을 말면 ‘고기국수’가 된다. 국물에 참모자반을 추가해 끓이면 최근 관광객들에게까지 웰빙식으로 각광받는 ‘몸국’이 된다.

과거 제주의 소울푸드는 이제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귀한 고기가 됐다. 제주 흑돼지는 일반 돼지고기보다 30~40% 정도 비싸지만 없어서 못팔 정도다. 돼지 사육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데다 품종개량과 품질 관리가 수십년간 맞물린 결과다.

이제는 제주에서도 더이상 인분을 먹고 자라는 ‘똥돼지’는 없다. 오히려 “화장실을 따로 쓸 정도로 청결한 돼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축사 및 품질관리가 엄격해졌다.

제주도식 수육인 돔베고기. 나무도마(돔베) 위에 돼지고기 수육을 썰어내 소금 등을 찍어먹는 음식이다.최충일 기자

제주도식 수육인 돔베고기. 나무도마(돔베) 위에 돼지고기 수육을 썰어내 소금 등을 찍어먹는 음식이다.최충일 기자

“깨끗한 환경서 좋은물 먹는게 맛의 비결”

지난 10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한 양돈농가. 축사 안으로 들어가자 막 태어나 어미젖을 뗀 1~3개월짜리 아기 흑돼지와 백돼지들이 바글바글했다. 돼지들은 깨끗한 시설에서 식수 자동공급기에 입을 대고 꿀꿀 소리를 내며 물을 먹고 있었다.

같은 시각 분만사 축사. 태어난 지 1개월이 안된 흑돼지 8마리가 말끔히 청소된 축사 안에서 어미 젖을 물고 있었다. 반려견이나 반려묘의 몸에서 나는 특유의 살냄새인 이른바 ‘꼬순내’ 외에는 악취도 거의 없었다. 양돈장 주인인 김진삼 대한한돈협회 제주서부지부장은 “사람도 함께 생활 할 수 있을 정도로 청결하게 축사 관리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년 이상 키우다보니 제주돼지는 본래 화장실을 따로 쓸 정도로 깔끔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악취나고 지저분한 것으로만 알려진 돼지를 깨끗한 축사에서 청결하게 키워 고정관념을 바꿔주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 10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의 한 양돈농가에서 젖을 막 뗀 어린 흑돼지와 백돼지들이 식수 자동급여기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10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의 한 양돈농가에서 젖을 막 뗀 어린 흑돼지와 백돼지들이 식수 자동급여기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돼지, 기원후 100~400년 멧돼지 가축화

전문가들은 제주에서 돼지가 가축으로 키워진 시점을 기원후 100~400년으로 보고 있다. 당시 한라산이나 들판 등에서 서식하던 야생멧돼지를 잡아다 길들여 키운 게 시작이다.

집에서만 키워지던 제주돼지가 대규모로 사육된 것은 1950~60년대 정부 주도의 양돈 사업이 시작되면서다. 당시에는 이라크 고대도시 건축양식 모양으로 지어진 ‘테시폰형’ 축사 등에서 배합사료 등을 먹여 키워졌다.

현재 식탁에 오르는 제주돼지는 최초로 사육된 멧돼지의 후손과는 좀 다르다. 현대의 제주돼지는 토종의 피가 흐르기는 하지만 서구 개량종과 섞여있다. 우리나라에 1903년 첫 서구 개량종 요크셔종이 들어 온 후 1905년 버크셔종이 들어와 토종 돼지와 결합됐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햄프셔종, 랜드레이스종 등 서양의 종자가 잇따라 들어왔다. 이후 1960~70년대부터는 랜드레이스종, 요크셔종, 햄프셔종, 듀록종 등의 교배종이 국내 사정에 맞게 개량돼 소비자를 찾고 있다.

지난 10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의 한 양돈농가에서 김진삼 대한한돈협회 제주서부지부장이 직접 키운 어린 흑돼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10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의 한 양돈농가에서 김진삼 대한한돈협회 제주서부지부장이 직접 키운 어린 흑돼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돼지, 화장실 따로 쓸 정도로 깔끔”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도 흑돼지다. 1986년 제주도축산진흥원에서는 재래 흑돼지 5마리(암컷 4마리, 수컷 1마리)를 확보해 순수 계통번식을 통한 국가 차원의 종(種) 보존 사업을 진행했다.

이후 고유성과 역사성을 인정받은 제주 재래 흑돼지 250마리가 2015년 3월 천연기념물 제550호로 지정됐다. 제주 농가에서는 이런 재래 흑돼지를 영국의 버크셔종과 결합한 비육용 흑돼지를 육성하고 있다. 재래 흑돼지는 몸집이 너무 작아 상품성이 충분한 고기를 얻기 힘들어서다.

제주 흑돼지는 여느 돼지와 털 색깔만 다른 게 아니다. 이미 흑돼지의 맛은 소비자들의 입소문은 물론이고, 학술적으로도 증명된 상태다. 현철호 제주도축산진흥원 가축지원과장은 “제주 흑돼지는 일반적인 랜드레이스 품종보다 근내지방 함량과 적색육이 많게는 3배 이상 많다”며 “이런 점 때문에 고기를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고소함과 감칠맛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1960년대의 제주 중산간 초원에 양돈 축사 등으로 쓰인 테시폰 건축물 시공 모습. 사진 맥그린치 신부 기념사업회

1960년대의 제주 중산간 초원에 양돈 축사 등으로 쓰인 테시폰 건축물 시공 모습. 사진 맥그린치 신부 기념사업회

천연기념물 흑돼지, 개량 통해 크기·맛 잡아

돼지고기는 제주의 사계절을 대표하는 먹거리다. 계절을 타는 생선류와 달리 열년 내내 비슷한 맛을 유지해 제주도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는다.

제주양돈농협에 따르면 2018년 350억원이었던 돼지 판매 매출이 지난해 370억원으로 증가했다. 제주양돈농협의 일반판매장 매출은 2018년 12억원에서 2019년 14억원, 지난해 18억원 대로 늘어났다.

고권진 제주양돈농협 조합장은 “여름 휴가철 되면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비육 및 온라인 유통, 분뇨 처리 등에 각별히 관심을 쏟고 있다”며 “온라인몰 ‘제주도니몰’도 오픈해 제주 돼지의 맛을 전국에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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